순수한 힘으로 세상을 구하는 전사, 손오공
순수한 힘으로 세상을 구하는 전사, 손오공
  • 차진세 기자
  • 승인 2009.11.01
  • 호수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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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속 감춰져 있는 의미 들여다보기

1984년 일본 만화 잡지 「소년점프」에서 연재가 시작된 이후 다음해 후지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을 강타한 만화가 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약 1억5천만 부, 전 세계에서 약 3억 부 이상이 팔린 이 작품은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이나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에네르기 파!’를 외치게 만들었고 만화가 연재되는 잡지를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점 앞에서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엇일까? 바로 「드래곤볼」시리즈다.

별이 새겨진 구슬 7개를 모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드래곤볼」은 전작 「닥터슬럼프」를 통해 주목받는 작가 대열에 올랐던 토리야마 아키라를 단숨에 일본 최고의 작가로 만들었다.  「드래곤볼」은 만화책과 더불어 TV판 및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슬램덩크」, 「유유백서」등과 함께 일본이 낳은 최고의 만화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드래곤볼」 시리즈의 다양하고 화려한 변화
「드래곤볼」의 정규 작품으로는 단행본으로 발간된「드래곤볼 오리지널」(「드래곤볼 무삭제판」기준 1~17권)과「드래곤볼 Z」(17~42권)가 있고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드래곤볼 GT」가 있다. 또 외전 격으로 10여 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기도 했다.

「드래곤볼」은 주인공 손오공이 성인이 되기 전인 14권까지 유머 요소가 풍부한 명랑 만화였지만 손오공이 성인이 된 14권 이후부터 격투만화로 거듭나게 된다. 이에 대해 황상태<서울문화사·만화부> 과장은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편집자가 만화에 개입하는 부분이 심하다”며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원래 「드래곤볼」을 전작 「닥터 슬럼프」와 같은 명랑 만화로 만들려 했으나 편집부의 참견으로 장르를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격투 만화로 바뀐 「드래곤볼」은 이후에도 편집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손오공이 본래 우주인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드래곤볼」은 명랑 만화적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고 공상 과학 만화로 변하게 됐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프리더를 마지막 악당으로 해 만화를 끝내려고 했으나 팬들과 편집자들의 연재요구에 못 이겨 인조인간 편과 셀 편을 내놨다. 작가는 셀 편에서 손오공을 죽여 연재를 마치려 했으나 끊이지 않는 독자들의 연재요구에 손오공이 부활한 마인부우 편을 새로이 만든 후 비로소 완결을 낼 수 있었다.

황 과장은 “80~90년대 일본 만화계는 편집자와 만화가의 갈등이 특히 심했다”며 “편집자와 팬들의 요구에 연재를 계속 이어나간 「드래곤볼」과 달리 「슬램덩크」는 연재 지속을 요구하는 편집자의 요청을 거부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드래곤볼」연재를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볼」의 인기는 계속됐다. 후지TV에서 「드래곤볼 GT」라는 이름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방영한 것이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감수를 받은 이 시리즈는 「드래곤볼Z」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일본 내에서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래곤볼」, 해체성과 폭력의 미학
서강대에서 논문 「드래곤볼의 구성과 해체 : 만화매체와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변원미 씨는 “「드래곤볼」은 겉으로 보면 구성요소들의 이분법적 구분이 짙은 만화”라면서도 “하지만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 그러한 구조가 실제로는 해체 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드래곤볼」은 서로 화합하거나 공존할 수 없어 보이는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드래곤볼」의 핵심 주제인 선과 악의 대립이 그렇다.

주인공 손오공은 ‘선’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악’과 싸우는 동기는 선의 실현보다 스스로의 강함을 확인하는 것에 있다. 손오공과 적대하는 악당인 피콜로, 베지터, 프리더, 셀 등도 보통 ‘악’의 실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강력한 라이벌인 손오공을 무찔러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임을 확인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드래곤볼」을 관통하는 이념은 ‘폭력의 유희’ 및 ‘선의 폭력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비록 동기는 다르지만 선과 악이 ‘폭력’이라는 같은 수단을 사용하며 전투 과정을 스포츠나 게임과 같은 유희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변 씨는 이를 두고 “「드래곤볼」은 선이 악보다 강하다는 권선징악적 원칙이 아닌 강한 자가 승리한다는 패권주의적 원칙이 작용하는 만화”라며 “이러한 폭력의 미학은 군국주의·제국주의와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업성을 드러내는 「드래곤볼」의 한계
일본 내에서 1억 5천만 부 가량이 팔린 「드래곤볼」은 해외에서 그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글로벌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드래곤볼」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다양한 문화적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 「드래곤볼」은 모든 요소는 동·서양의 민담과 영화, 소설 등에서 사용한 소재를 만화적 특성에 맞게 재정립한 것이다. 주인공인 손오공과 무기인 여의봉부터가 고전 소설 「서유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또 플레이보이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손오공의 스승 무천도사와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차용한 타임머신 등의 요소는 서구적 소재다. 이러한 「드래곤볼」의 색다른 구조는 세계 각국의 소년층에게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황 과장은 할리우드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을 예로 들며 “비록 영화의 작품성 한계로 흥행에 실패했지만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제작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드래곤볼」이 그만큼 강력한 문화적 파급력을 세계 곳곳에 보유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이것은 비단 「드래곤볼」만의 현상이 아니라 일본만화 전반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게임 「드래곤볼 온라인」이 정식 서비스 준비 중에 있다. 김형종<엔티엘인크·개발부> 상무는 「드래곤볼」등의 일본 만화가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일본의 경우 인기 만화를 제작 당시에 이미 상업적 이용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경향이 짙다”며 “이러한 일본 만화를 재생산 상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드래곤볼」의 스토리는 「드래곤볼 GT」에서 손오공이 용신과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공식 스토리의 종결 후에도 동인지 「드래곤볼 AF」가 「드래곤볼」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드래곤볼 GT」이후의 이야기를 한 독자가 상상해 그린 것으로, 그림체가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와 매우 흡사해 세계의 「드래곤볼」 매니아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비록 ‘제국주의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 작품이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고 이를 그리워하는 팬이 세계 각국에 존재한다는 것은 만화의 문화콘텐츠적 파급력이 약하고 작가의 실정이 열악한 우리에게 그저 부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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