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는 외롭다, 그래서 아름답다
피아니스트는 외롭다, 그래서 아름답다
  • 최서현 기자
  • 승인 2009.10.31
  • 호수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 끝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피아니스트 조치호<피아노과 72> 동문을 만나다

피아니스트는 화려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이 그들의 손에서 퍼져 나온다. 피아니스트 조치호 동문은 12년 만에 연주회 무대에 섰다. 그는 곡 하나를 연주하기 위해 몇 달을 고심하고 연습해도 연주회는 늘 아쉽기만 하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는 그의 오래된 왼손에는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그것은 지난 50년, 그가 피아노와 함께 해온 화려함의 모습이자 외로움의 기록이었다.

음악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낀다
그는 5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모차르트가 처음으로 작곡을 시작했다는 시기, 조 동문은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했다. 이것은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도중, 한국전쟁이 시작돼 음악가의 꿈을 접게 됐다. 그런 아버지에게 조 동문의 미래는 곧 아버지의 꿈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에게 피아노는 부담일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습관처럼 배워왔지만 레슨시간은 지루했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당시 교사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의 레슨은 방학이 될 때마다 길어졌다. 그에게 방학은 마냥 즐거운 휴식기간이 아닌 혹독한 훈련의 기간이었다.

조 동문은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도, 피아노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았다. 평소처럼 피아노 레슨을 받던 날, 그는 우연히 아버지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된다. 테너였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웅장하고 우아했다. 처음 듣는 아버지의 노래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마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그후, 그는 콩쿠르에서 처음으로 우수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대학 입시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성적 때문에 재수를 하게 됐는데, 피아노 이외의 공부는 관심조차 가지 않았어요. 음악을 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저 피아노를 연습하는데 바빴죠. 매일 피아노를 연주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내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2년, 한양대 피아노과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7전 8기 도전과 연습, 끝없음을 느끼다
한양대 입학 후에도 그의 끝없는 연습은 계속 됐다. ‘피아노 연습은 3시간을 하면 그때서야 손이 풀린다’는 어느 피아니스트의 말을 기억하며 하루 10시간 이상을 연습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콩쿠르에서 매번 아쉬운 성적에 머무르곤 했다. 그러던 그가 1974년, 동아 콩쿠르에서 첫 우승을 하게 된다. 콩쿠르 7번 동안 2위만 하던 조 동문에게 1위는 그만큼 값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7전 8기, 꾸준한 연습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100% 만족하지 못했다. 연습을 할 때마다 더 배워야 할 것, 고쳐야 할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특히 동그란 손 모양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바흐식 주법이 그에게는 불편하기만 했다. 손끝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 매번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교수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지만, 조 동문에게는 계속되는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독일의 음대는 우리학교와 사뭇 달랐다. 주어진 작품을 자유롭게 연습하고, 연주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독일은 주어진 틀 속에서 공부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이제까지 해오던 방식을 바꾸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독일 유학 중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깨달음도 많았다. 각각의 작품들은 작곡가의 감정을 담고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정서를 갖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느낌과 감성을 청중에게 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피아니스트는 작품을, 그리고 작곡가를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조 동문은 타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곡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연주의 기틀을 그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남을 ‘이해’한다고 쉽게들 말하죠. 타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머리에 담는 것을 이해라고 말해요.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진정으로 남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그 자신이 될 때 가능해요. 겉보기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걸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이 피아니스트가 갖춰야할 인품이라고 생각해요.”

피아니스트로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자, 그의 문제였던 주법이 저절로 해결됐다. 그가 찾은 답은 스카를라티 주법이었다. 당시 주류인 바흐 주법과는 달리 그에게 편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주법을 익히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는 도레미부터 체르니, 하논 등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곡에서는 어느 주법이 편한지 연구했다. 비로소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크게 문제될 것 없으니 해오던 것을 유지하라’는 말을 뒤로 하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그는 ‘사서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살, 한창 연주회를 하며 이름을 날려야 했던 시기였다.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주법 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그는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이를 해결하는 데 남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 문제는 몇 년에 걸쳐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에게 연주회는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연주회를 가지며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그의 문제들은 그의 장점이 됐다. 이제야 피아니스트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간암이었다.

“날 때부터 간이 좋지 않았어요. 어느 날 독주회에서 연주를 하는 데 유독 몸에 기운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 이후 건강이 악화돼 입원을 하게 됐어요. 음악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즈음, 간암판정을 받게 된거죠.”

한창인 시절부터 ‘사서 고생’을 해온 그에게 건강악화는 큰 좌절로 다가왔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나는 좌절해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조 동문은 어떤 불리한 환경 속에 있다면 그것은 좌절이 아니라 남과 다른 특별함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간이 좋지 않았던 것도, 젊은 시절 간암 판정을 받은 것도 성장을 위한 조건이었다고. 그에게 필요한 일은 더 열성적으로 피아노 연구를 하는 것뿐이었다.

가끔 증상이 심해져 입원을 해서도 계속 음악을 들었다. 기운이 빠져 축 쳐져있다가도 음악을 들으면 그 속의 에너지가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독주회를 반복해서 들었다. 아픈 와중에도 자신의 연주를 들으며 부족함을 찾았다. 이 곡에서는 어떤 기분을 담아야 하는지, 작품의 에너지를 어떻게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피아니스트는 외롭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의 연습과 연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아직 몸이 좋지 않지만, 지난 9월부터 연주회 무대에 다시 서기 시작했다. 12년의 투병 끝에 선 무대는 그에게 벅찬 감동이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하니 ‘아,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생명을 얻은 기분까지 들었죠. 준비는 힘들었지만 그 동안 아팠던 것들이 모두 낫는 것만 같았어요. 치료약이 없다는 간암에 걸린 나에게 음악은 유일한 치료약이 된거죠.”

다음달 2일 그는 또 다른 연주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요즘 건강이 다시 안 좋아지고 있는데다, 왼쪽 손목까지 상태가 좋지 않다. 손에 파스까지 붙이고 있으면서도 조 동문은 연주회로 들뜬 모습이었다. 앞으로의 포부를 물으니 그저 남은 생애, 연주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연주하며 살고 싶단다.

그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삶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그가 수도승처럼 느껴졌다. 수도승이 오랜 참선을 통해 영혼을 닦아나가듯, 그는 오랜 연습과 연구를 통해 음악을, 그리고 예술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음악에는 끝도 없고, 정답도 없다. 그는 그 끝없음을 알면서도 그곳에 도달하고자했고, 외로운 과정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음악‘쟁이’가 아닌 음악‘장이’로서 성숙하게 음악을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음악‘장이’는 자신에게는 언제나 냉정한 평가를 내리며, 완전한 만족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금껏 외롭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는 아름답다. 때가 묻은 채 화려하기만한 예술이 아닌, 순수하고 온전한 예술을 하고 있으니.                                 
 사진 이유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