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의 삼십 년, 전과 후
한양대의 삼십 년, 전과 후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10.11
  • 호수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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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주석 서울신문 논설위원<국어국문학과 79> 동문

진사로에 첫발을 내디딘 지 벌써 삼십 년이 흘렀다. 캠퍼스를 오르내리며 고민했던 많은 것들은 아직 진행형이다. 삼십 년 전 학생신분에서, 지금은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뀌고 나이만 먹었을 뿐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를 악물고 뛴 동문선배가 거울이 됐다. 그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주눅 들지 말자!’, ‘ 꿀리지 말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잘 나가는 동문들이 오늘의 자리를 얻는 데 출신대학의 이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1차 경쟁전선인 고시와 시험을 통과하는 데는 실력이 최우선이다. 입사 후에는 실력과 인간성이 좌지우지했을 것이다.

삼십 년 전 내가 입학한 한양대는 몇 등쯤 됐을까. 2차 대학이었기에 순서를 매기기가 좀 애매했다. 성균관대와 곧잘 비교됐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규모가 작은 대학과 여자대학을 제외하면 당시와 엇비슷한 ‘5개 메이저 대학’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듯하다. 브랜드 이미지는 훨씬 좋아졌다. ‘공대’ 이미지도 많이 벗었다.

 ‘서울대, 연대, 고대는…….’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지상의 대학기사에서 한양대의 이름은 빠지는 경우가 많다. 불만이 많았다.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언제쯤 주요 대학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언론정보대학원장과 언론학회장을 지내고 정년퇴직하신 신문방송학과 박영상 교수는 회고록에서 대학서열을 앞당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담을 털어놓으셨다. 공감이 갔다.

학교는 시청 앞 프레지던트호텔에 언론정보대학원을 차려놓고 유력 언론인들을 유치해 무료교육을 하면서 학교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덕분에 나도 석사학위를 받았다. 뿌린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대학 단독 기사보다 종합기사의 서열이 관건이다. 서울대, 연대, 고대 다음 자리를 차지하려고 우리뿐 아니라 3~4개 대학이 매일 매일 피 터지는 전쟁 중이다. 내가 기사를 쓴다고 해도 대학의 순서를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다만, 유리한 위치를 잡도록 기사를 작성하거나 잘리지 않도록 배치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할 뿐이다.

 동문언론인을 많이 배출하면 순서가 뒤집힐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옛날 대한일보처럼 우리학교 재단이 언론사를 운영, 편집권을 장악하지 않은 한 손대기 어렵다.

언론사의 대학서열은 사회통념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회통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동문이 모든 영역에서 고루 활약하고, 여건이 조화를 이룰 때 자연스럽게 가능해 질 것이다.

 직장생활 초창기 고교동문과는 자주 어울리면서도 대학동문끼리 자리는 뜸했다. 직장에서 여유가 생기면서 만남이 잦아졌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동문끼리 서로 어울리게 된 것 같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학교에 대한 ‘충성도’가 훌쩍 높아진 사실을 서로 확인하곤 한다. 삼십년이 지났다. 이제 후배에게 힘을 주는 선배의 역할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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