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못하는 기능올림픽 수상자
취업 못하는 기능올림픽 수상자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10.10
  • 호수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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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이 본 기술자 경시 풍조

옛말에 위태로운 짓을 비겨 말할 적에는 ‘장님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물을 들어선다’고 했다. 양반들은 국가를 이끄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장님과 같았다. 청의 문물을 오랑캐라 배격하지 않고 우수한 것을 선별해 받아들였더라면 임진왜란과 호란 같은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내가 열하를 여행할 때 그곳에서는 사농공상이 다들 제 자리를 잡고 귀천 차별이 없었다. 직업에 따라 혼인을 하거나 벼슬길에 나아가는데 한계가 있지 않느냐 물으니 저자를 지나던 이들은 웃으며 제 구실을 못하는 거렁뱅이만이 무시당할 뿐이라고 답했다. 이 말에 조선 양반 사대부의 기생충적 생활이 심히 부끄러웠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함부로 입과 귀만 믿고 떠드는 자들은 떠받들면서 국가의 실익을 가져다주는 기술자들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하니 그저 비탄할 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만을 선호할 뿐 세계적으로 그 기술을 인정받은 장인인 국제기능올림픽 메달 수상자도 고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제기능올림픽은 직업훈련, 기능수준의 향상과 국제친선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능경기대회다. 매년 혹은 격년마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기술자들이 모여 그 솜씨를 뽐낸다고 한다. 

우리민족은 손재주가 뛰어나다. 빛을 발해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그 재주를 발휘해 2년째 세계 최고라는 영예를 얻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장인으로 인정받은 이들이 취업도 하지 못한다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내 저서 「예덕 선생전」에서 선귤자의 입을 빌어 말했듯이 엄행수와 같이 노동하는 백성들이야 말로 깨끗하고 향기로우며 가장 고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기능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하고도 동네 철공소에서 잡일을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대우가 아닐뿐더러 국가적 손실이다.
이는 임금에게 바칠 정도로 훌륭한 갑옷을 만드는 장인이 바늘을 만드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바늘을 남들보다 수십 개씩 빨리 만든들 갑옷에 비할쏘냐.

나는 옛 학자들과는 달리 이용(利用)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厚生), 즉 넉넉한 생활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국을 여행할 적에 조선에 비해 넉넉한 그들의 생활을 보고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왜 벽돌로 쌓은 정갈한 주택, 사통팔달한 교통, 갖가지의 편리한 수레, 번창한 상가를 가질 수 없는가. 그것은 노동과 기술을 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맨 밑자리의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용후생을 실천할 수 있다면, 내게 볼 만한 구경거리는 바로 기와 부스러기에 있고 똥거름에 있다. 우리가 때때로 보고 듣는 사실 속에 참된 진리가 있거늘 먼 데서 취할 게 무엇이랴.

중국은 무엇이든지 이익이 될 만한 것은 그것이 오랑캐에게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주저 없이 이를 이용했다. 때문에 중국은 대국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쓸모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똥오줌이라도 금싸라기같이 중요하다.

독일이란 나라는 기술자를 중시해 기술로 전 세계에 그 이름이 드높다 한다. 기술자들의 능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능올림픽의 수상자들은 취업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절망해 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더 이상 슬픈 메달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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