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귓바퀴에 세상과 감동을 불어넣다
관객들의 귓바퀴에 세상과 감동을 불어넣다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10.10
  • 호수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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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 4회 수상에 빛나는 김석원<토목공학과 78> 동문을 만나다

소리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세상을 그대로 담아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은 초인종, 문을 닫는 것 등 영화의 사소한 소리 하나까지도 모두 만들어진 음향이라는 것. 관객들에게 생생하고 깨끗한 음향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전투 장면을 위해 촬영소 인근에서 직접 총을 쏘고 격투를 벌여가며 오직 소리만을 창조하는 남자, 바로 (주)블루캡 대표이사 김석원<토목공학과 78> 동문이다. 그는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올드보이」 등 국내 주요 흥행영화 120여 편의 음향제작을 담당해 지난 1996년 제36회를 시작으로 37회와 38회, 그리고 41회 대종상영화제 음향기술상을 연거푸 수상했으며, 이어서 제3ㆍ4ㆍ6회 MBC대한민국영화대상 음향상에 빛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눈 감고도 가능한 소통, 소리와 관객
발을 찍찍 끄는 소리, 갈라진 목소리와 상스러운 말투. 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계층,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경험 덕분이다. 감독이 직접 설명 하지 않아도 소리는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이는 영상, 분장 등과 더불어 관객이 영화에 빠져드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에서 소리가 이렇다 할 표시는 나지 않지만 소리 없는 영화는 생각하기 힘들죠. 우리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을 ‘소리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고 싶어요. 음향으로 관객들의 심리현상을 유발하는 ‘사이코 어쿠스틱’의 재미가 쏠쏠하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공부에요. 음향제작은 알수록 재밌고 매력적인 일이죠.”

 한편  우리나라처럼 학생들이 영화를 좋아하고 탐구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한국 영화의 발전은 젊은이들의 관심이 있어 가능하다고.

“우리영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아요. 저도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영화관 뒷좌석에서 내가 넣은 소리에 호응하는 관객들을 볼 때 정말 뿌듯하죠. 소리로 인해 무서운 장면에선 더 무서워하고 슬픈 장면에선 눈물 흘리는 관객들 덕분에 참 행복합니다.”

영화음향의 역사에 그은 의미심장한 한 획
김 동문은 유난히 음악을 좋아해 대학시절 서울ㆍ경기지역 연합 음악동아리 ‘상투스’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3학년 때 광고음악회사 ‘서울오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군대를 마치고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갖으려던 당시 ‘서울오디오’ 사장이던 가수 김도향은 “토목분야에는 네가 없어도 괜찮지만 음향시장에 넌 꼭 필요한 존재”라며 그에게 음악의 길을 제안했다. 이는 음악을 좋아하던 그가 음향분야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영화음향으로 맡은 첫 작품은 비상업영화 「한국영화 100년사」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진흥공사가 모든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총괄했죠. 94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민간 최초로 디지털 방식의 음향작업을 시도했어요. 컴퓨터에 소리를 넣을 수 있듯이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죠.”

제작비는 비교적 저렴하고 질은 더 좋으며 인력 절감까지 가능했던 그의 획기적인 도전은 우리나라 영화음향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난해 김 동문은 중국영화 「집결호」를 통해 기술수출을 하기도 했다. 곧 「단산대지진」 이라는 중국 영화도 맡을 예정이다.

계속되는 도전으로 흥미진진한 매일
김 동문은 영화 「쉬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꼽는다. 「쉬리」는 우리나라 영화가 블록버스터 급으로 진입하는 분수령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회사에 의뢰된 영화만 작업해왔지만 「쉬리」 시나리오를 우연히 접하고는 참 마음에 들었단다.

“결국 강제규 감독을 찾아가 잘 해보겠다고 했어요. 둘이 열심히 음향에 매달렸지만 기술적 한계에 많이 부딪혔죠. 비행기 삯을 겨우 마련해 미국에 배우러 다니기 일쑤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재밌는 기억이에요. 당시엔 힘들기도 했지만 서울만 해도 100만 관객을 동원해 깜짝 놀랐죠.”

그는 작업할 때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행복을 느낀다. 특히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스스로도 매우 만족하는 편이다. 배우 송강호가 해부를 하는 장면에선 메스로 생닭의 배를 가르고 케첩을 넣는 등 새로운 기법을 많이 시도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파슬리를 부러뜨려 내기도 했다. 케첩과 머스터드는 피가 나는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쓰인단다. 그에겐 이런 매일이 흥미진진하다.

“반면 「태극기 휘날리며」를 지금 보면 너무 촌스럽고 아쉬운 느낌이에요. 쉬리는 창피해서 다시 볼 엄두가 안 나죠(웃음). 당시에 아무리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2년만 지나면 다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 반성하고 발전을 체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젊은 시절 롤 모델에게 배운 음향교육의 꿈
그는 처음으로 그를 이 방향으로 이끈 가수 김도향을 존경한다. 또 영화 「레옹」 등의 음향감독 존 모리스는 그의 음향인생에 있어 아버지 같은 분이다. 존은 우리나라가 대전엑스포를 개최할 시절 녹음을 도와주러 왔다가 우연히 김 동문과 손을 잡게 됐다.

“제가 영화음향 일을 하고 싶다며 운을 띄우자 선생님은 그때까지의 제 경력을 추켜세우며 일단 해보라고 자신감을 주셨어요. 엑스포가 끝나고 미국에 함께 가서 헐리웃 영화를 위주로 공부했죠. 요즘도 작업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해요. 종종 밥도 먹고 가깝게 지내죠.”

김 동문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의 부족한 음향 교육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현재 한국에서 음향감독이 되기 위한 음향전문사 과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만 개설돼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음향연구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음향은 영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의 문화콘텐츠에 접목될 수 있어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교육여건은 여전히 부족하다.

“음향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소리 응용은 영화인 모두가 알아둬야 해요. 후배들을 끌어주고 싶어서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서도 강의하고 싶은 생각이 있죠(웃음). 결국 전문 음향감독을 양성하고 최상의 음원을 제공할 수 있는 음향지원센터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이제는 한양인의 ‘파워’를 보여줄 때
현재 영화계에는 우리학교 출신이 많지만 유대감이나 동문 모임은 비교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는 학교 명성에 비해 한양인의 ‘파워’를 다질 기회가 부족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구심점을 만들어 정기적인 영화계 동문 모임을 추진했으면 해요. 선배로서 후배들을 끌어주면서 서로 돈독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는 ‘상투스’ 활동을 위해 종종 학교 앞에 기타를 맡기고는 출석체크만 마치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도 그 곳에서 만났다. 그는 그 시절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게 있다면 후배들이 끝까지 매달렸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인생을 돌아보면 얻은 게 참 많거든요. 영화 개봉이 임박해 시간은 짧고 할 일이 많을 땐 정말 피곤하지만 전 그것조차 재밌게 여기죠. 사람은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진솔한 얘기를 했을 때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가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김 동문. 그는 오늘도 소리를 만들고 영화를 만든다. 여유롭고 소탈한 그의 마음과 눈웃음이 녹아든 음향은 언제나 관객의 가슴에 오롯이 남으리라.

 사진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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