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나요
당신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나요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10.10
  • 호수 13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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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서대문 형무소, 그곳에 가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뒤편 전경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이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날아갔다. 총알은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관통했고 다음 해인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됐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지 100주년 되는 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맞아 그가 뤼순 감옥에서 남긴 편지와 사진들이 지난 8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대다수의 매체가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비롯한 지난날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멘트를 끝으로 보도를 마쳤다.

안중근 의사의 편지와 사진이 TV 전파를 타던 날,  당시의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독립투사들의 한이 서려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하 역사관)을 방문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역사관 주변은 한산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역사관의 완벽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공사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
제 12옥사 내부 모습

역사관은 일제강점기 동안 서대문감옥 또는 서대문형무소라 불리며 일본이 독립투사들을 수감ㆍ고문하고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이에 ‘과거의 아픈 역사를 통해 온 국민들이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부끄러운 지난날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애국애족의 뜻을 배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자 1998년 11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공사가 한창인 역사관으로 들어섰다. 공사 때문인지 내부가 어수선하다. 그 곳을 지키는 사무소도 산만한 모습이다. 관람권을 제출하자 한 직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던 공사 관계자와 역사관 직원을 비집고 나와 안내서를 쥐어준다. 역사관 내부는 ‘제대로 관람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저곳이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관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관람을 시작했다. 공사 중이라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한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을 지나 실제 독립투사들이 수감됐던 감옥 중 하나인 제12옥사로 향했다.

이곳에는 실제 열사들이 수감됐던 감옥의 모습과 함께 일제의 조선 침략과정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특히 독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그 분위기부터 거부감이 들 정도다.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습한 공간, 나란히 붙어있는 3개의 방은 한 사람이 눕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작고 비좁은 곳이었다. 독방에서 고통받았을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니 그 분위기는 배로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역사관 내부의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설명, 이것 외 다른 것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이후 들어간 제11옥사에서는 열사들이 어떻게 고문을 받았으며 감옥에서 그들의 생활은 어땠는지 인형으로 전시돼 있었다. 오랜 시간 전시된 것들이라 사실성이 떨어지고 헤진 것이 눈으로도 쉽게 보였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가슴 속 깊이 느껴진다. 특히 벽관은 일제의 잔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문도구였다. 벽관은 일제가 수감된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기 위해 만든 도구로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아 2~3일씩 벽관에 갇혀 있으면 전신이 마비되기도 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작게 뚫린 구멍으로 벽관 안을 들여다봤다. 독립투사들이 느꼈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가슴을 파는 것 같다.

처음 관람을 시작했던 제12옥사에는 올해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된 해이며 그렇기에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설명 외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이나 활동에 대해 소개하는 것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인형과 비디오를 통해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한 느느낌만 전달할 뿐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기에 역사관이 갈 길은 멀 어 보였다.‘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애국애족의 뜻을 배우기 위해’ 역사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얻어가는 것은 역사관이 어떻게 고쳐지며 이 공사가 언제까지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공사 관련 게시물들은 역사관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역사관이 좀 더 스산하게 느껴졌던 것은 턱없이 적은 관람객 수가 일조한 듯했다. 평일이라 그런 것일까. 역사관의 관람객은 공사 인부를 제외하고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역사관 관계자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음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몇 년 전만해도 어린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역사관을 방문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역사관 설명을 담당하는 자원봉사 모집도 수월하게 이뤄졌고요. 하지만 지금은 과제를 하기 위한 학생 관람객이 대부분이에요. 3ㆍ1절이나 광복절에 관람객이 반짝 늘어나긴 하지만 그것도 예전에 비하면 적은 수죠. 요즘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방문객 수가 내국인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김효은<대전시ㆍ유성구 24> 양은 어렵게 만난 관람객 중 한 명이었다. 경찰 행정을 공부한다는 그녀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고문이 어땠는지를 보기 위해 역사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사실 고문 모습을 보기 위해 역사관을 방문했지만 막상 보니 가슴이 먹먹해져요.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배우긴 했었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한 번도 우리 역사에 대해 되짚어보지 못했거든요. 올해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라니 기분이 묘해요. 제가 잊고 살았던 100년의 세월로 인해 현재가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 같아서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마저 드네요.”

역사관 뒤쪽, 수많은 독립투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장이 눈에 띈다. 사형장을 둘러싸고 있는 옹벽이 뿜어내는 기운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사형장 들어가는 길 심어져 있는 미루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사형장 안쪽에 있는 미루나무는 독립투사들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한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같은 시기에 심어진 바깥쪽 나무보다 유달리 왜소한 안쪽 나무의 모습이 나무를 부둥켜안고 마지막 눈물을 흘리는 독립투사의 모습과 겹쳐진다.

오늘의 자유를 위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100년 전 자신의 한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관. 역사관에는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했던 순국선열의 마음은 있었지만 그들에게 감사하고 미래를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요즘 대학생들의 역사 인식 점수가 몇 점이다,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학생들 비율이 몇 퍼센트다 하는 수치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되새기고 그들을 잊지 않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지식이 아닌 진심 어린 마음이 역사를 기억케 하는 최고의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9년과 2009년, 100년의 교감을 나누고자 했던 역사관 관람은 씁쓸한 마음을 남긴 채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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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38:56
이 글은 역사관을 방문하며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관 내부의 편안한 분위기와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공사로 인해 관람이 어려워진 점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이 아쉬움을 남겼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조되는 글입니다. 역사를 읽어나가며 나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