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자라온 짱구 이야기
우리와 함께 자라온 짱구 이야기
  • 차진세 기자
  • 승인 2009.09.27
  • 호수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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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년째를 맞은 「짱구는 못말려」를 되돌아보다

‘떡잎 마을의 무법자’라 불리는 5살짜리 꼬마가 있다. 이름은 신짱구. 녀석의 특기는 자는 엄마 얼굴에 낙서하기, 엄마나 유치원 선생님의 외모 놀리기, 사고치고 수습하려다 더 큰 사고로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기 등이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제일가는 말썽쟁이’가 따로 없지만 짱구의 인기는 20년째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짱구의 이런 모습을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잘못된 버릇을 주입시킨다”는 이유로 만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 학부모협회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짱구는 못말려」(원제 「크레용 신짱」)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만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짱구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들에게 강력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일본이 낳은 대 문화상품, 짱구
짱구는 1990년, 만화가 우스이 요시토에 의해 탄생했다. 최초의 짱구 만화는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는 달리 성인용 만화로 ‘19금’ 딱지가 붙었다. 당시 만화 전반에 퍼져있던 외설적 주제와 표현 등은 아동용 만화로 변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부모들에게 ‘유해만화’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짱구는 못말려」는 단행본으로 49권,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17편까지 나온 상태다.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1994년 이후 매년 4월 중순에 개봉해 4월을 ‘짱구의 달’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행본이 48권까지 번역, 출판됐으며 현재 15번째 극장판 「전설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이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그만큼 짱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강력한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짱구 캐릭터를 이용한 게임, 문구류 등 각종 문화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 짱구가 좋아하는 「액션가면」과 ‘초코비’도 실제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김원호<학산문화사ㆍ국제부> 부장은 “「짱구는 못말려」는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일본 만화는 전통적으로 재미를 가장 중요시한다”며 “이를 통해 일본이 만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라고 평했다.

또 김 부장은 “단순한 유머로 무장한 「짱구는 못말려」를 수작으로 꼽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그러나 작품성을 떠나 그러한 유머를 5살 아이의 입과 시각을 통해 독특하게 풀어낸 점이 「짱구는 못말려」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다섯 살 짱구, 그 안에 담긴 의미
짱구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째고 수많은 단행본 및 애니메이션이 나왔지만 짱구는 여전히 5살에 머물러 있다. 여동생 짱아가 태어나는 등 짱구네 가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정작 짱구가 나이를 먹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동안 국내 만화 커뮤니티에서는 짱구가 계속 5살인 이유에 대해 ‘짱구가 자폐증을 앓고 있어 의식이 5살 수준에 멈춰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는 후에 근거 없는 루머였음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저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일본 문화를 소개한 이원복<덕성여대ㆍ시각디자인전공> 교수는 “일본 사회는 단란한 가족의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데 4인 가족에 5살 오빠와 갓 태어난 여동생이 있다는 설정은 그런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짱구의 성장과정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만화의 주제가 짱구 개인보다 그를 둘러싼 가족과 주변 환경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만화 내에서 짱구의 모습 역시 흥미롭다. 5살 아이치고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성을 밝힌다. 또‘다녀왔습니다’를 ‘어서 오너라’로 말하는 등 거꾸로 행동하기 일쑤다. 성기와 엉덩이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도 짱구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서강대에서 ‘미디어와 여성’을 강의한 장은미<서강대ㆍ신문방송학과> 강사는 짱구의 행동에 대해 “짱구가 자신의 몸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은 남근주의와 관련 있다”며 “짱구는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짱구가 즐겨보는 만화인 「액션가면」의 주제가 ‘강한 남성이 약한 여성을 구한다’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짱구에서 볼 수 있는 일본문화
「짱구는 못말려」는 기본적으로 가족을 주제로 하는 만화다. 그만큼 짱구에는 일본사회가 지향하는 가정사회의 전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모습은 바로 일본식 가부장제다.

‘젊고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짱구 아빠는 기본적으로 아내인 짱구 엄마에게 명령하는 위치에 있다. 짱구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도 존댓말로 짱구 아빠를 대하는 반면 짱구 아빠는 항상 반말을 한다. 게다가 짱구 엄마는 만화에서 게으르고 살찐 사치스런 아줌마로 묘사되곤 한다. 이 교수는 “일본은 전통적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사회”라며 “「짱구는 못말려」가 20년 전에 처음 만들어진 만화인 만큼 20년 전의 인식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2년 할부를 통해 산 집이긴 하지만 서민층에 속하는 짱구네 가족은 잔디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 촌에 살고 있다. 한때 집이 가스폭발로 사라져 잠시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갔지만 집이 복구되자 이내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은 우리나라에서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인데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일본 서민을 대표하는 짱구 가족이 이런 집에 산다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적 형편과 무관하게 일본의 단독주택은 마당에 차 한 대 정도 들어갈 만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일본인들이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지진에 더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짱구의 이야기
「짱구는 못말려」의 원작가 우스이 요시토씨는 등산을 하다 절벽에서 실족사한 상태로 지난 20일 발견됐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20년째 지속돼 오던 만화의 연재가 이미 작가가 제작해 놓은 12월호분 이후로 중단될 것으로 예상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른 작가가 새롭게 「짱구는 못말려」를 연재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원작자인 우스이 요시토 특유의 유머를 보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다.

「짱구는 못말려」처럼 완결이 나기 전에 작가가 사망한 다른 만화로는 「도라에몽」이 있다. 「도라에몽」의 경우 팬 사이트에서 팬들이 각자 예상한 결말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을 만화화한 형태로 끝을 맺었다.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에서는 「창천항로」의 스토리작가 이학인 씨가 연재 도중 지병으로 사망해 다른 스토리작가가 연재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짱구는 못말려」시리즈를 즐겨봤다는 김상훈<과기대ㆍ과학기술학부 09> 군은 “짱구를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짱구는 못말려」도 연재가 끊이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라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짱구와 함께 커온 20대 대학생들은 세월이 흘러도 5살인 짱구를 보며 때때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이제 우리는 짱구의 장난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세월을 보낸 짱구는 말썽꾸러기 이미지로 우리 마음 속에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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