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다가온 거문고의 매력
운명처럼 다가온 거문고의 매력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09.27
  • 호수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음악콩쿠르 거문고 부문 1위 우민희<국악과 석사과정 4기> 씨


우리에게 거문고는 익숙한 듯 생소한 악기다. 영화「쌍화점」에서 주인공들이 고려가요를 부르며 타는 악기가 거문고라는 것을 떠올리니 감이 잡히는 듯 하다. 거문고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고유의 악기이지만 이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을 찾긴 힘들다. 하지만 운명처럼 거문고를 시작해 세종음악콩쿠르 전통음악부문 거문고 1위를 차지한 우 씨와 거문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다. 

중후한 거문고 소리의 매력에 빠지다
“사실 제가 거문고를 전공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초등학교 시절까진 거문고를 접해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제가 거문고를 평생 연주할 거라는 사실이 신기할 때도 있어요.”

거문고와 아무런 인연이 없던 그녀와 거문고의 만남은 우연하게 이뤄졌다. 초등학교 6학년 특별활동 시간, 친구의 가야금 연주를 들은 13살의 한 소녀는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다. 난생 처음 들어본 가야금 소리였지만 그 음색은 소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날부터 우 씨는 가야금 대신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가야금 소리에 매료된 그녀가 거문고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문고는 낮은 음을 내는 악기에요. 그 중후한 소리가 너무 멋있었어요. 가야금 소리에 반하긴 했었지만 마음을 울리는 거문고의 소리가 제 가슴을 더 울렸죠. 그래서 거문고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어요.”

거문고와 그녀의 운명 같은 만남은 시작도 남달랐지만 그 과정도 특별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거문고가 뿜어내는 매력에 더 깊게 빠져든 것이다. 악기를 배우다 보면 꼭 한번 씩 실력이 늘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도는 시기가 있는데 이마저도 그녀를 피해갔다. 거문고 연주는 체력 소모도 많고 손가락이나 관절 부상도 잦지만 그 과정마저도 더 좋은 연주법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거문고를 타는 것이 즐거웠고 하나씩 더 배워 나가는 나날이 행복했던 그녀는 부모님께 국악을 전공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국악중학교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갑작스런 발표에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지만 그냥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부모님께 딱 대놓고 말씀 드렸죠. 시험만 쳐 보겠다,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앞으로 거문고에 관련된 말은 절대 꺼내지 않겠다고요. 결국 당당하게 합격했죠.”

그렇게 거문고와 우 씨와의 동고동락은 시작됐다.
 
꾸준한 노력의 결실을 얻다
약 10여년의 세월동안 거문고를 연주한 그녀지만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많은 대회에 출전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항상 최고의 자리 직전에서 좌절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매일 거문고를 타던 그녀에게도 연주자로서 큰 시련이 찾아온다. 대학교 3학년 때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오직 거문고와 함께 살아왔으니, 슬럼프가 한번 찾아올 법도 하죠. 전공을 너무 일찍 선택해서 생기는 단점이랄까, 다른 친구들은 다 1, 2학년 때 전에 겪은 일을 3학년 때 겪으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한 1년 동안이 암흑기였죠. 하지만 그 순간에도 제가 거문고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를 후회한 적은 없어요.”

꾸준한 연습으로 결국 슬럼프를 이겨낸 우 씨는 대학원으로 진학한 이후에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이뤄야 할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컨디션이 허락하는 대로 거문고를 연주했다. 세종음악콩쿠르 출전도 그녀의 계획에 맞춰 물 흐르듯 이뤄졌다. ‘2009년 가을, 대회에 나간다’는 목표와 세종음악콩쿠르의 개최시기가 겹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제가 콩쿠르에 출전하기에는 사실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학부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하는데, 제 욕심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회에 나갔죠.”

그렇게 출전한 콩쿠르에서 우 씨는 승승장구해 결선까지 진출하게 됐다. 전통음악부분 대상을 놓고 겨루는 무대, 결선 대회의 지정곡은 바로 ‘거문고 산조’였다. 연주자들은 거문고 산조 중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뽑아 곡을 재구성해야 했는데, 우 씨는 주저 없이 ‘여운이 남는 부분들’을 뽑았다. 거문고의 낮은 소리가 내는 낮은 떨림 속 느껴지는 여운, 그녀가 관객들에게 가장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대회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결선에서 아쉽게 대상을 놓치긴 했지만 1위를 하고 나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갑자기 국악 전공하겠다는 딸 때문에 고생을 참 많이 하셨거든요. 도움도 정말 많이 주셨고요. 엄마가 참 좋아하실 것 같았어요.”

대회 당시만 해도 1위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상의 기쁨이 크게 다가왔다.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데 큰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거문고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
우 씨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국악계에서 ‘우민희’하면 모두가 알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한다. 매일 자신을 위해 거문고를 타고 거문고 연주자를 꿈꾸는 국악중학교 후배들을 가르치며 그녀는 최종 목표를 향한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

“거문고라는 악기는 참 매력이 많은 악기에요. 제가 어떻게 힘을 주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음이 나올 수 있죠. 이러니 지겨울 틈이 있나요? 새로운 소리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항상 거문고를 잡을 땐 설레요.”

거문고는 참 힘든 악기다.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그녀의 손에는 어김없이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거문고를 배우고 난 뒤 비가 오면 관절이 쑤신다며 수줍게 웃는 우 씨.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배움의 길이지만 거문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의 눈빛은 오직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거문고 연주자들 수가 적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의 전통악기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악기잖아요. 제가 사람들에게 거문고의 매력을 부끄럼 없이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오를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거에요. 힘들지 않냐고요? 제 운명과 함께 하는데 뭐가 힘들겠어요. 이미 함께 가기로 정해진 운명인걸요.”    

 사진 최서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