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평등 빼앗는 수시전형료
기회 평등 빼앗는 수시전형료
  • 유현지 기자
  • 승인 2009.09.27
  • 호수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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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티아 센이 바라본 경제적 입시 불평등
나는 9살 되던 해, 벵골에서 벌어진 대기근을 목격했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이 참사는 어린 나에게 경악과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후 나는 경제학자의 길을 걸으며 기아와 빈곤문제에 초점을 맞춰 경제학을 연구하고 있다.

결과와 수치에만 집중하는 양적 성장을 경계하고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경제관점을 지향하자 학계 사람들은 내게 ‘경제학계의 양심’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내가 「불평등의 재검토」,「센코노믹스」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 꾸준히 강조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간개발, 둘째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차가운 재화로 이뤄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을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끄는 발전은 재화의 존중이 아닌 인간 자체의 발전을 지향한다. 기초적 교육을 통한 인간 자체의 발전을 기반으로 민주주의 제도와 개인의 안전보장을 확립해 재난의 방지와 근절을 꾀한다. 나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센코노믹스(SENconomics)’는 인간 개발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이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대학들이 수시전형료로 학생들에게서 걷어가는 돈이 천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내 조국인 인도에서는 대학이 기초적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 속에서 대학 입학의 수시지원은 학생들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의무적인 경제적 부담이다. 또 수시는 지원 횟수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학생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불평등한 시작선이 주어진다.

비싼 전형료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여론의 논란의 목소리가 커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대입 전형료 수입 지출에 대한 세부적인 공개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밝혔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불평등한 시작점을 제공한 채 긍정적 결과를 기다리는 사태는 내가 ‘합리적 바보’라고 비판하는 공리주의의 사고방식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쾌락과 고통을 사회 전체적으로 합산해서 그것을 조직의 기본 원리로 삼는다.

쾌락과 고통의 결과만 놓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결과주의적 논리는 행위의 동기와 의도,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주의와 보편주의를 낳기 때문이다. 결국 개개인의 이기적 행위와 효용 극대화가 결국은 전체적인 비극을 초래한다. 한국의 정부가 합리적 바보 역할을 한시 바삐 그만두고 ‘인간’에 맞춰진 정책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진행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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