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가벼이 대중의 품에 안기다
철학, 가벼이 대중의 품에 안기다
  • 문종효 기자
  • 승인 2009.09.20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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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학문으로 단장한 철학 편견의 벽 허물어

우리는 ‘철학’하면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수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 복잡한 인과관계를 외우는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두꺼운 철학 관련 서적과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철학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철학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이나 만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생활과의 융합으로 재단장한 철학 강좌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실용 철학 강의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관련 학문 및 문화와 융합하거나 현실사회의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도록 ‘변신’을 거듭하는 철학을 만나보자.

철학의 선입견 없애는 우리사회

최근 철학의 활발한 변화는 철학도서 출판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철학 서적들은 이론만을 설명하려는 원론적인 도서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현실사회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책들이 더 많이 출판되고 있다. 만화 「신의나라 인간나라」시리즈 철학편의 저자 이원복<덕성여대ㆍ예술학부> 교수는 “철학은 학문적으로 분석하려면 상당히 난해하고 까다롭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얘기”라며 “철학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상의 핵심을 찌르면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저서 「신의나라 인간나라」 시리즈 철학편은 경제ㆍ정치ㆍ사회ㆍ문화의 광대한 분야의 철학적 사유를 다양한 사례와 아기자기한 그림을 활용해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풀어쓴 만화책이다. 그는 “현대인이 자기 신념을 가지고 생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양이 철학”이라며 자신의 집필에 대해 “복잡하고 난해한 철학을 해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이런 철학도서의 대중화 열풍을 반기고 있다. 주의준<사회대ㆍ관광학부 09> 군은 “얼마 전 청소년용 철학도서인 「철학통조림」이라는 책을 읽었다”며 “이타심도 이기심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런 대중적 철학도서들은 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실생활에도 굉장히 유용하다”고 전했다. 강민호<서울시립대ㆍ조경학과> 군은 “철학에 관해 읽을만한 도서를 알아보다가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라는 책을 찾아냈다”며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데 이 책은 장면 하나하나를 철학적으로 해석해서 참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용이 다소 난해한 부분도 있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를 분석하는 철학만의 접근방식은 마음에 든다”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시민을 위한 철학 강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전남대에서 개최한 겨울철 시민 철학 강좌 「마이 아카데미」를 비롯해 최근 IT산업체나 환경 연구원에서 이뤄지는 강의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와 같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생활에 접목한 교양 철학 강좌가는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철학의 다양화를 주도하는 상아탑

철학의 대중화는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각 학교마다 철학 관련 교양수업을 이전보다 다양하게 개설하거나 학생들끼리 철학적 대담이나 토론회 등을 개최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내용도 철학에 관한 원론적인 수업보다 흥미를 돋우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내용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학교에 개설된 관련 강의로는 △‘불멸의 철학자들’△‘대중문화 속의 철학’△‘사랑의 철학’△‘신화와 철학’△‘인간과 윤리적 삶’ 등 10여 개가 있다. 이 수업들은 수강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아 대단위 강좌로 운영되고 있다. ‘불멸의 철학자들’과 ‘인간과 윤리적 삶’을 가르치는 홍경자<인문대ㆍ철학과> 교수는 “학술적 목표를 위해 철학을 연구하는 천상철학을 지양하고 삶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는 지상철학을 지향하는 것이 내 강의의 목표”라고 밝혔다.

철학이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것을 배우는 것만이 아닌 자신에 대한 성찰, 삶의 물음이기 때문에 현실과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대학의 철학 강의는 ‘철학 개론’과 같은 학술ㆍ원론적인 강의가 주를 이뤘지만 오늘날은 보다 대중적이며 현실을 반영하는 강의의 비율이 높아졌다. 홍 교수는 또 “학생들은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내적 성장을 이뤄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면서 “철학적 사유가 없이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불멸의 철학자들’ 강의를 듣고 있는 이혜민<사회대ㆍ관광학부 09> 양은 “원래 철학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강의를 듣기에 앞서 걱정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교수님이 제시해준 여러가지 사유방식이 실생활의 적용에 유용해서 좋았는데 예를 들면 철학 강의를 들으면서 충동구매를 자제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대중문화 속 철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임경석<인문대ㆍ철학과> 교수 역시 “철학이 대중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음식에 퓨전열풍이 불었던 것과 같은 이치”라며 “70년대 철학이 학생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 교양이었다면 오늘날의 철학은 주변학문과의 만남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물론 어디까지나 초점은 철학에 있어야지 주변학문에 있어서는 안된다”며 “그 점이 내가 강의를 하면서 가장 주의하는 점”이라고 전했다.

강의 외에 학생들이 직접 철학 토론활동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사회대 생활도서관에서는 최근 학생들이 주축이 돼 ‘독서토론 세미나’를 갖고 있다. 독서토론 세미나는 △철학△경제△인권△여성△예술 분야의 이슈 및 현안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의 의견을 펼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토론회다.

생활도서관장 김민석<사회대ㆍ신문방송학과 05> 군은 독서토론 세미나에 대해 “원래 철학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모임”이라며 “그러나 철학만을 다루면 학생들이 지루해할 것 같아 다루는 현안을 철학을 포함한 다섯 가지 갈래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내에서 이런 토론자리가 자주 없었던 만큼 관심있는 학생들도 참여하는데 머뭇거리는 것이 사실”이라며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명언과 같이 신념을 가지고 학생들의 토론문화를 학내에 정착시켜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한 철학 공부법

이처럼 철학의 다양한 모습이 우리사회에 보여지고 있지만 그것만 보고 철학의 성격을 오인해서는 안된다. 보다 쉬운 학습을 위해 철학이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이지 주객이 전도돼선 안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임 교수는 “학생의 신분으로 학문을 너무 쉽게만 배우려고 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며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사유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문답법이 있다. 문답법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 끊임없이 사유의 폭을 넓혀나가는 철학 공부방식으로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주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문답법을 통해 논의를 계속 확장시키다 보면 거의 모든 철학적 담론을 연결지을 수 있고 이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철학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철학상담’이 대표적 사례인데 사람들의 고민을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이론을 이용해 치유하는 상담방식이다. 홍 교수는 “철학상담의 경우 유럽에서 매우 활성화돼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단어조차 생소한 게 현실”이라며 “내적 문제 해결을 중요시하는 이런 철학 방법론이 우리나라에서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 최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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