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한 그릇에 비벼낸 근현대사
자장면 한 그릇에 비벼낸 근현대사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09.19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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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서 「짜장면뎐」
따사로운 가을을 맞아 노천극장 곳곳에서 삼삼오오 자장면을 먹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짬뽕을 주문했다가도 신나게 자장면을 섞는 친구에게 한 입 얻어먹는 그 맛. 학생들은 외친다. “역시 노천에선 자장면이지.”

역사서 「짜장면뎐」은 자장면으로 중국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명한 미시ㆍ일상적 관점의 역사서다. 또 책에서 자장면은 ‘짜장면’으로 표기된다. 이유인즉슨 ‘자장면’이 시장과 언중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란다. 중화요리점 중 ‘자장면’을 파는 곳은 없으며 2002년 국립국어원의 표준발음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지역 210명 가운데 70%가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발음했다.

저자 양세욱<인문대ㆍ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자장면은 우리 민족과 산업화라는 전쟁을 함께한 전투식량”이라며 “한ㆍ중 근현대사가 담겨있음에도 자장면에 대해 집필된 논문 하나 없어, 중국 유학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수업을 듣는 제자들과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방문해 한ㆍ중 역사를 돌아보곤 한다.

「짜장면뎐」을 펼치면 자장면의 화려한 이력서가 펼쳐진다. 하루 600만 그릇이 팔리며 영화, 연극, 동화, 노래 등 폭넓은 분야에서 주제로 쓰이는 자장면. 문화관광부는 지난 2006년 자장면을 ‘한국을 100대 민족문화 상징’으로 선정했고 지난 2008년 ‘MB물가지수’ 관리대상 생필품 중에서도 유일한 외식상품이었던 자장면은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 추억이자 현재다.

1부에선 중국의 역사ㆍ문화와 더불어 인구만큼 다양한 요리들, 면이 발달할 수 있었던 과정이 다채롭게 나타난다. 양 교수의 시선을 따라 중국 기행을 하는 듯 흥미진진하다. 책 곳곳에 나타난 “대장금이 살던 시기엔 여성 궁중요리사가 거의 없었다”거나 “일각에서는 짜장면을 우리 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뿌리는 중국 산동지방” 등의 대목에서 우리는 편견을 해소하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충분한 배경지식 이후 2부에선 본격적으로 자장면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 참신한 구성에 면발처럼 말려든다. ‘누들로드’로 불리는 다양한 면들의 이동 과정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지만 쇠락하는 자장면의 인기를 마주하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탓에 중국과 수교를 가장 늦게 시작한 나라”라며 “서로를 비하하는 짱꼴라와 선족(조선족에 대한 중국인의 부정적 호칭)같은 언어 사용부터 줄이는 등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학계에서도 미시ㆍ일상적 학문이 중시되듯 사소한 것들에도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다”며 “주변의 사물들에도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렇게 한ㆍ중 두 나라의 관계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장면은 역사의 산 증인이다. ‘섞임과 나눔’이 본질인 음식이 국경을 넘나들듯 우리도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

「짜장면뎐」에서는 배달 오토바이 출입 금지, 서울배움터 앞 한양각 등의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늘 점심에는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한 그릇 비비러 가야겠다.

★ 「짜장면뎐」은 백남학술정보관 4층 394.12 양538ㅉ에 3권이 비치돼 있다. 안산배움터에서는 캠퍼스 대출 신청으로 만날 수 있다.

사진 최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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