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옵티콘에 갇혀 감시받는 대한민국
판옵티콘에 갇혀 감시받는 대한민국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9.09.19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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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푸코가 말하는 기무사·국정원 감청

미셸 푸코
나는 평생을 노동자, 죄수, 이민자, 동성애자 등의 소수자를 위해 저항했다. 물론 나 자신도 동성애자에 에이즈 보균자인 소수자였지만 제 3세계를 누비면서 이민자 운동, 사형제도 폐지, 동성애 권리 투쟁 등에 참여한 이유는 사회의 폭력성에 저항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합리성’과 ‘이성’으로 이해하는 서구 근대사회 문명은 성립 과정에서 폭력성을 수반했었다. 이런 폭력적인 사회 통제 메커니즘은 주류 사회의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 뒤에 교묘하게 숨어 작동하고 있다.

최근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감청 의혹이 불거졌다. 기무사는 노태우 정권 때 민간인 감청 폭로 사건으로 명칭을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기무사로 바꾸면서 민간인 감청은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기무사 요원의 수첩과 동영상, 사진은 이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혐의자 등의 인터넷과 전자우편을 실시간 감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청은 법원이 허락한 도청이다. 그러나 수단이 합법적이라 해서 그 행위가 합법적인 것은 아니다. 감청은 대상자에게 연극을 강요한다.

지금까지는 정보ㆍ수사 기관이 전화나 팩스, 우편물 등을 감청하는 사실만 알려졌었다. 하지만 이번에 국정원이 사용한 ‘패킷 감청’은 인터넷에 들어가 무엇을 보는지, 전자우편이나 메신저를 통해 어떤 내용의 대화를 주고 받는가를 원격으로 실시간 엿볼 수 있다. 회선을 같이 사용하는 직장 동료, 가족 등도 모두 감청되고 해외도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감청 행위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행하는 숨겨진 폭력이다.

처벌은 사지 절단이나 교수형같이 잔인한 신체 공격을 구경거리로 삼는 ‘호화로운 신체형’에서 규율에 힘입어 감옥과 같이 감시하는 형태의 ‘순종적인 신체형’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신체에 가하는 폭력 대신 감시로 변했다고 해서 처벌 방식이 근대화됐다거나 인간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더 효율적이기에 권력이 전략적으로 폭력의 형태를 바꾼 것에 불과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제창한 영국의 철학자 벤담은 변호사였다. 특히 형벌 제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죄수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1791년 ‘판옵티콘’이라는 원형 감옥을 설계했다. 벤담은 판옵티콘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 감옥뿐 아니라 군대, 공장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판옵티콘을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봤다.

그러나 나는 내 저서「감시와 처벌」에서 이 판옵티콘의 감시 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 사회의 기본 원리로 변화됐다고 봤다. 판옵티콘은 단순한 격리와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근대 이전의 감옥과는 다른 목적에서 설계됐다. 판옵티콘 중앙의 높고 어두운 감시탑에서 간수는 죄수의 모든 행동을 볼 수 있으나 그 주위에 둥글게 배열된 구조의 밝은 감방에 갇힌 죄수는 간수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죄수는 늘 자신이 감시받는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사회는 안전을 위해 경찰과 같은 권력 기관에 치안을 위임힌다. 하지만 경찰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판옵티콘과 같이 숨겨진 감시 수단으로 모든 것을 감시해야 한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의 톱니바퀴 같이 스스로가 이끄는 권력에 역으로 포위돼 판옵티콘 안에 있는 것이다.

컴퓨터망을 통해 수집된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자료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도구로 잘못 사용될 수 있다. 기존 대화ㆍ전화 감청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직접 표현하지만 인터넷 감청은 어떤 사이트를 방문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글을 읽는지 등 직접 표현하지 않은 사람의 의식 흐름까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국민의 ‘표현되지 않은 생각’까지 정보기관이 들여다보는 것은 과도할 뿐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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