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의 탈을 쓴 한강르네상스
공리의 탈을 쓴 한강르네상스
  • 손수정 기자
  • 승인 2009.09.13
  • 호수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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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이 본 한강르네상스 사업
공리주의는 간단하게 말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혹자는 다수결의 원리처럼 최대 다수만을 고려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결의 원리는 단순히 사람 수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만 공리주의에서는 각 사람들의 선호 정도까지 고려한다. 그래서 공리주의는 다수결의 원리에서 문제되는 소수억압이 발생하지 않고 발생해도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의 오세훈 서울 시장이 서울 시민들의 공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한강과 한강 주변을 통합적으로 개발하는 사업인 한강르네상스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지역을 나누는 경계가 돼 그동안 지역 간의 경제적ㆍ문화적인 격차를 조장해 왔다.

따라서 일단 한강르네상스 사업으로 지역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고 친환경적인 조성 사업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쾌적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오 시장의 의도이다.

그러나 질적 공리주의자인 나의 눈에는 그가 단지 서울 시민들에게 공리를 제공하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이 사업을 진행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서울시는 비가와도 콘크리트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열흘 걸릴 공사를 하루 이틀 만에 끝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서울시에선 “서류상에는 한강공원의 준공기간이 연말까지로 돼 있지만 실제론 9월안에 완료할 계획”이라며 공기단축을 시인하고 있다. 서울시의 이런 밀어붙이기식 행태는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선거법은 연말부터 자치단체장이 각종 행사에 참석, 테이프 커팅을 하는 등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어 이를 피해 서둘러 오 시장의 치적을 알리자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학문적 스승인 벤담의 공리주의 입장과 대부분 일치한 견해였으나 결국 공리주의자로서 내가 택한 경로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당시 쾌락의 양을 통해 도덕을 논하던 벤담을 ‘배부른 돼지의 철학’이라 비난받고 있는 상황에서 구해내야 했다. 나는 해결 방법으로 ‘양’이 아닌 ‘질’을 택했다.

나의 저서인 「자유론」은 소수자 억압에 반대한 대표적인 책이다. 공리주의자들은 행동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고려해 그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행동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공리를 추구할 때 최대 다수의 전제를 수용하면서도 불행의 방지ㆍ감소에 더 중점을 뒀다.

혹자는 어느 서울시 관계자의 말과 같이 “하루라도 빨리 앞당겨 개방하는 게 시민을 위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빨리 개방해 시민들이 느끼는 행복이 속성ㆍ부실공사로 인한 안전 위협에 대한 불안보다 질적으로 더 높을까. 질적 공리주의자인 내 관점으로 볼 때 한강르네상스의 신속공사는 질적으로 옳지 않고 공리를 추구하고 있지도 않다.

시간이 갈수록 한강르네상스 사업은 본질에서 벗어나 서울의 집값을 올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개발 사업을 전시용으로 이용하려는 행정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 시장은 서울 시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공리가 무엇인지, 한강르네상스의 고속진행이 오히려 서울시민의 공리를 해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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