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공학인 리더십, 대학교육에서 길러주고 싶어”
“여성공학인 리더십, 대학교육에서 길러주고 싶어”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09.07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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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학 리더 최순자 교수 인터뷰

최순자<인하대ㆍ생명화학공학부> 교수는 대표적인 한국여성공학인으로 손꼽힌다. 여성공학인 1세대에 속하는 그녀는 한국여성공학인협회를 설립, WISE 프로그램, WATCH21 프로그램 추진 등 국내 여성공학인 양성 인프라의 대부분을 마련했다.

지금은 공학자로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지만 최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학을 공부하려는 생각도 없었단다. 그녀는 인문사회계열에 관심이 있었고 천경자 같은 화가나 철학자, 심리학자 등 꿈이 너무나 많은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공학을 선택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 화학공학은 각광받을 정도로 전망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유능한 화학공학 엔지니어가 되면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 여성이 진출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하면 후에 성공하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 시대에는 공학을 전공하는 여성이 무척 드물었다. 최 교수가 다니던 인하대 공대에도 약 700명의 학생 중 여성이 3명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공대 내에는 화장실부터 휴게실 등등 여학생을 고려한 시설이 거의 없었고 불편함도 많았다. 그러나 학업은 남학생들에 비해 뒤쳐진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취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어느 대기업의 엔지니어 모집에 지원하기 위해 줄 서 있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줄을 잘못 섰다”며 “비서 줄은 저쪽”이라 말했다. 엔지니어에 지원한 공학도라고 하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하기도 했다.
“나는 공대를 나온 여성이라서 일반 기업체에 취직할 수 없었습니다. 여성이 아니었거나 공대를 나오지 않았다면 취직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죠” 취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천성이 낙천적인 최 교수도 상당히 낙담했다고. 집안에서는 최 교수가 취직해 가정 형편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담과 비참한 심정은 더했다. 그해 1월의 일기를 보면 ‘3년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자. 그 후에는 내 길을 가자’라고 쓰여있다. 기업에 취직할 수 없었던 최 교수는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공학 전공자에게 주어지는 준교사 자격으로 임용고시를 쳤다.

그 후 교직생활을 하며 인하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다가 진정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그녀는 진지하게 화학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인하대 대학원의 석사과정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에는 모교의 교수가 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였죠. 공학분야 뿐 아니라 전교를 통틀어 여성 교수는 한 손가락안에 들었어요. 제 장점을 봐 주신 은사님들과 저를 여성공학자가 아닌 한 사람의 유능한 공학자로 봐 준 총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현재 최 교수는 자신의 자리에 만족한다. 후배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특히 대학교육 과정에서 여학생들에게 여성공학자로서의 역량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사회에 나가서는 역량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대학 교육 과정에서 최대한 능력을 키울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최 교수는 여성공학인 양성 제도를 정부에 제안할 뿐만 아니라 여성공학자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국여성공학인협회’를 설립했다. 또 공학자를 꿈꾸는 여학생을 위해 한국공학한림원의 지원을 받아 「세상을 바꾸는 여성 엔지니어」시리즈를 출간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인하대 교수가 된 후 인하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사람들은 이미 교수의 지위가 된 사람이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을 의아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녀에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 교수는 은퇴 후에도 악기, 미술 등 자신의 현 전공과는 다른 분야를 배울 계획을 세웠다. 최 교수는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전공분야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더 큰 꿈을 꿀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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