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성은 우편함에 영화를 넣는다
송해성은 우편함에 영화를 넣는다
  • 유현지 기자
  • 승인 2009.09.06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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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송해성<연극영화학과 85> 동문

‘송해성’이라는 감독 이름 보다 영화 「파이란」, 「역도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그의 영화가 그를 더 잘 말해준다. 송 동문에게 영화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담은 일기장이자 편지다. 그는 자신의 편지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를 원한다. 영화로 자신을 표현하는 송해성 감독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해성, 영화에서 찾은 꿈
송 동문은 인문대 연극영화학과 85학번이다. 요즘은 진로를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고 점수 대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다보니 원하지 않은 전공을 선택하는 대학생들이 다반사다. 이런 세태와 비교했을 때, 삼수를 하면서까지 연극영화학과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꿈을 향해 달린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라는 공간을 싫어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획일적인 수업들이 싫어서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도 특별한 꿈이 없었고 책 읽는 것 외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어요.”

송 동문은 틀에 박힌 수업들로 가득 찼던 학교를 피해 주변 도서관이나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정확한 년도수를 떠올리며 답했다.

“영화감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83년도였어요. 어느 날은 경복궁 앞에 있는 프랑스 문화당에 영화를 보러갔어요. 당시 60원이라는 값싼 영화비를 내고 영어 자막의 프랑스 영화를 보게 됐죠. 당연히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이상하게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나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직도 그 때의 벅참을 잊을 수 없는 송 동문에게 그 영화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의 시발점이 됐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영화에 담아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고 한다.

그를 깨우는 신선함, 쌓이는 밑거름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갖고 힘들게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학교의 시스템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학문이라기보다 예술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연극영화학 전공이었지만, 주입식 강의들은 더욱 더 그를 학교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에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관과 도서관이 강의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잊지 못할 강의가 있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 중에 하나가 무대에서 즉석으로 자신의 이름을 이미지 세 컷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처음 접하는 새로운 형식의 시험이여서 잘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시험을 치룬 저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대학 공부’의 신선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충무로에는 유독 한양대학교 출신들이 많다. 연극이나 영화계에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해내는 우리학교의 저력은 무엇일까.

“당시 타 대학 연극영화학과는 팀을 이뤄서 한 작품을 만들어도 충분히 졸업할 수 있었지만 우리학교는 2학년 때 부터 반드시 개인당 한 작품씩 만들어야 했어요.
등록금이 50만원이었을 때인데 영화 한 작품을 만들려면 20만원이 필요했으니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부담됐죠. 하지만 어찌됐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봤다는 것은 큰 경험이었어요. ”

또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의 저력을 ‘인문대’에서 찾는다. 지금은 예술학부로 독립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연극영화학과는 인문대에 속해 있었다. 영화란 기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아온 소양들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인문대 연극영화학과 소속은 축복이었다. 당시엔 자신이 속한 단과대의 수업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해성 감독의 영화 색깔
“저는 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냈어요. 지금의 대학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였죠. 그 때는 정권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들이 개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줄 때였어요. 저는 그 때 사회를 향해 돌을 던져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인지 대학시절에는 적극적으로 사회에 반항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하듯 영화를 만들었죠”

대학시절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송 동문만의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그의 영화 팬들은 어떤 점에 반해 그의 영화들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일까. 그가 답하는 송해성의 영화는 ‘한국 리얼리즘’이다. 이 기조야 말로 2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그의 근본적인 메시지였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장르를 가리진 않아요. 하지만 요즘에는 고전을 중점적으로 읽고 있어요. 그만큼 좋은 작품들이 없더라고요. 그 당시의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작품을 진정한 작품이라고 보는데 요즘 작품들은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아쉬워요.”

시대를 비출 수 있는 이야기를 ‘진짜 이야기’라고 보는 송 동문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자신의 작품은 단연 「파이란」이다.
그의 첫 영화 「카라」가 흥행 실패 뿐 만 아니라 비평에도 무참히 실패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송 동문의 선배는 왜 ‘너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선배의 말에 큰 충격을 받고 유작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마음 가짐으로 「파이란」을 찍었다.
감독 송해성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담아낸 ‘유언장’과도 같은 영화였다. 결국 송 동문은 그 이후로도 「역도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그의 진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세상에 하나 둘씩 더 내놓게 됐다.

한국 리얼리즘을 그리는 영화인의 조언
송 동문은 관심사가 사회와의 투쟁으로 한정됐던 80년대와는 다른 오늘날의 대학 생활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지만 목표로 안정적인 삶을 위해 취업만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안타깝단다. 그에게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젊은이답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에 재미를 느끼고 열정이 생겨야 실패를 해도 장렬하게 하고, 성공을 해도 장렬하게 할 수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인데 그 특권을 버리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죠.”

세상에서 선택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직업 1위는 미국 대통령, 2위는 영화감독이다. 매 순간순간 영화감독은 OK와 NG를 선택해야한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는 영화감독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동문이 영화인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이유는 그에게 영화란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편지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관객들에게 찢겨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송 동문이 끊임없이 관객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아직 그에겐 영화로 전할 이야기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진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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