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시계가 저녁 8시를 가리킨다. 학교 근처 한 편의점에서 나의 야간 아르바이트가 시작된다. 야식을 해결하러 들어오는 고등학생부터 담배를 사러오는 아저씨까지 손님도 다양하다. 손님이 뜸해질 쯤 라디오를 켠다. 최저임금이 현재 4천원에서 내년에는 4천110원으로 올라간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최저임금은 개인 사업자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법”이라며 “대기업과 개인 사업체에 똑같이 법을 적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항상 말하는 편의점 사장님의 목소리도 같이 들리는 듯하다.
대학생 신분으로 구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있고 주변 편의점 시급도 3천500원에서 3천800원 사이이니 위법임을 알아도 참고 일하는 수밖에 없다.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는 학생들도 많은데 괜한 말을 꺼냈다 잘릴 것이 뻔하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겠다는 결심으로 새벽에 일하고 있지만 아르바이트생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현실에 울컥 화가 치민다.
라디오에서 방송 종료를 알리는 멘트가 들릴 때쯤 문이 열리며 근처에 사는 친구가 들어온다. “최저 임금 4천원도 안 되는 시급에도 일을 해야만 하냐”는 나의 질문에 “최저임금이 4천원이었냐”며 되묻는다. 야간ㆍ휴일 수당은 커녕 최저임금이 얼만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친구는 “요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요즘엔 수습기간이라는 것도 있단다. 3개월 동안은 최저 임금에서 10%가 깎인 3천600원을 받으며 일해야 하는 것이다.
수습기간을 거친 후 정식 고용을 해야하지만 이 제도를 악용하는 업주들도 있다. 3개월 동안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시급으로 아르바이트생을 부려먹은 다음 3개월이 지나면 해고하는 것이다. 이번 학기 등록금도 겨우 마련한 친구는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아도 용돈이라도 해결하게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교복 위에 앞치마를 입고 있는 고등학생 둘이 들어온다. 앞치마에는 주변 문구점 상호가 수놓아져있다. “학생들은 시급 얼마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만 본다. 한 학생이 입을 떼려하자 옆에 있는 아이가 “점장님이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지 말랬다”며 눈치를 준다. “다른 데 가서 말하지 않을 테니 털어놔봐라”는 타이름에 “3천100원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주변에 고등학생을 고용하는 곳이 없으니 시급이 적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 한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업장이 올 상반기에만 벌써 6천 곳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몇 달 전 노동부로 부터 권고조치를 받은 다른 편의점 사장님도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최근 노동계에는 최저임금 위반으로 두 번 적발되는 사업장은 형사 처분이 가능한 법안을 청원 중이다. 하지만 처벌대상 대부분이 영세업체고, 근로감독관이 턱 없이 모자란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바쁘게 상품을 배열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자료제공 : 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