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이스트’에서 ‘에코이스트’가 되기까지
‘에고이스트’에서 ‘에코이스트’가 되기까지
  • 권경하 기자,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09.06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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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별을 위한 첫걸음 ‘착한문화’

한양이(가명)는 학기 중 틈틈이 모은 돈으로 지난 방학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잘 먹고 잘 쉬자’는 목표로 시원한 콘도에서 모처럼 피로를 풀었다. 어제는 다가오는 엄마의 생신을 위해 온라인 경매로 유명 브랜드의 옷을 샀다. 저렴한 가격에 쾌재를 부르는 한양이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착한문화’를 접하고부터였다. 착한문화를 실천하는 이들은 똑같은 일상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와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새 여행하고 옷을 입고 물건을 사는 문화도 진화하고 있다. 환경ㆍ사회적으로 친근한, 그리고 더불어 삶을 추구하는 일상이 여기 있다.

착한여행으로 시작하는 더 착한 일상
히말라야에서 당신이 1번 따뜻한 샤워를 하는 동안 나무 3그루가 스러진다. 태국에서 코끼리를 타고 즐거워하는 동안 수천 마리의 아기 코끼리들이 잔혹한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다. 쓰레기와 보트 기름으로 죽어가거나 스노클링으로 짓밟힌 산호 한 조각이 다시 자라기까진 200년이 걸린다.

‘착한여행’이란 상품ㆍ산업화된 오늘날의 소비 지향적 여행을 지양하고 새로운 문화를 돌보며, 현지인과 관광객이 공존하는 관계로서의 여행을 말한다. 김남조<사회대ㆍ관광학과> 교수는 “대량소비와 대중관광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착한여행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환경ㆍ문화자원 보존 측면에서 ‘여행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의를 가진다”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현지인을 이해하는 도덕적 관광의 새로운 틀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학 라오스에 착한여행을 다녀온 오은애<숙명여대ㆍ경제학과 07> 양은 “착한여행에는 참여 프로그램이 주를 이뤄 밭과 논을 매며 현지인들처럼 살았다”며 “특히 새벽에 무릎 꿇고 스님들께 시주를 드리는 의식이 있는데 현지인, 스님, 관광객 중 현지인이 된 느낌은 정말 색달랐다”고 회상했다. 또 “원주민들과 더불어 지내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며 “친구들은 왜 비싼 돈 주고 그 고생을 했냐고 묻지만 내 새로운 경험이 어려운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이라고 전했다.

아직까지 착한여행이라면 고생스럽고 전문가들이 오지에 들어가 하는 여행이라는 편견도 있다. 혹자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독특한 여행을 한다는 데 의미를 두기도 한다. 

착한여행기 「희망을 여행하라」 제작단체의 서정기<이매진피스> 평화교육연구자는 “학생들이 착한여행을 남들과 차별화되려는 수단이 아닌, 하나의 윤리적 여행 구조로 받아들였으면 한다”며 “가이드북을 버리고 그 지역의 문화, 종교 등 기본적인 공부를 찾아서 하며 돌아와서도 전기를 아끼고 환경 파괴를 막는 ‘착한일상’으로 이를 연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착한패션으로 윤리적 옷 입기
착한문화의 확산에 있어선 패션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우리의 옷장마저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오늘날 ‘착한패션’으로 불리는 ‘윤리적 패션’은 기존의 의생활이 소비 지향적이었던 데 반해 친환경 소재, 재활용, 공정무역을 기반으로 옷을 제작하고, 의식 있는 의상문화를 확산시키고자 시작됐다.

이 점에서 윤리적 패션은 기존의 에코패션이나 그린패션 등과 구분 지을 수 있다. 에코ㆍ그린패션은 단순히 친환경 소재나 재활용으로 패션을 재해석하는데 중점을 뒀다. 하지만 윤리적 패션은 의류제작의 전반적인 생산 및 유통과정을 비롯해 정치ㆍ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안형주<디자인대ㆍ섬유디자인학과> 강사는 “착한패션은 학생들이 이기적인 자기꾸밈만을 추구해온 패션이라는 분야를 통해 이타적 개념과 나눔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이는 곧 어떻게 사회의 일원이 되고 지구와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7월부터는 이런 변화를 반영한 전시 「패션의 윤리학 - 착하게 입자」가 진행 중이다. 캔 뚜껑, 자투리 천을 비롯해 콩이나 쐐기풀 같은 천연재료들로 만든 의상들이 당당하게 걸려있다. 전시를 기획한 황록주<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는 “최근 들어 패션을 비롯한 전체 산업계의 화두가 에코라는 흐름을 타고 있다”며 “유명 패션브랜드들도 앞다퉈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움직임 속에 윤리적 패션이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2ㆍ30대 10명이 모여 만든 착한패션 기업 ‘오르그닷’, ‘그루’ 등이 속속 등장하는 한편 아직까지 착한패션이 밋밋하고 수공예라 비쌀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이에 안 교수는 “때에 따라 친환경 소재와 공정무역은 비교적 높은 생산 단가를 만드는 요인이 되는 건 맞다”면서도 “의류생산 과정의 쓰레기를 최대한 줄인다든지 디자인 과정에서부터 효율적인 재단을 고려하는 등의 노력이 있다면 환경을 위한 작은 행동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가격의 부담을 덜어주는 이점까지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착한경매에서 비롯되는 더불어 삶
요즘은 한양이처럼 관심물품을 입력해 클릭 한 번으로 낙찰 받는 인터넷 경매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다. 지난 8월엔 한국조폐공사가 5만 원 권 빠른 번호 1만 9천 900장을 인터넷 경매에 내놓아 얻은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정신지체장애인단체 ‘소망의 집’에 후원을 하고자 8명의 20대가 만든 사회 봉사활동 동아리 ‘매크로휴먼재단(현 소울프로젝트)’의 블로그소울팀은 지난달 ‘착한경매(Good Auction)’ 행사를 열어 걷은 낙찰금을 전액 기부했다.

착한경매란 이처럼 입찰자는 경매를 통해 원하는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구매하고 수익금은 기부가 되는 신개념 경매문화를 말한다. 수익금은 후원기업의 이름으로 기부돼 이미지 제고가 가능하며 주최 측은 새로운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셈이다. 김동윤<블로그소울> 편집장은 “블로그소울은 학생들을 포함해 모두 20대로 이뤄졌다”며 “이번 행사 역시 젊은 층의 신개념 기부문화 창출ㆍ홍보를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착한경매에는 모집한 300명 중 250여 명이 참석해 덥고 습한 날씨에도 높은 참여도를 보였다.

행사에 참여한 김도원<명지대ㆍ경영학과 05> 군은 “개인적으로 의류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 경매에 물품도 함께 제공했다”며 “처음 있는 행사라 많은 부분이 미숙해 아쉬웠지만 남을 도우며 갖고 싶은 물건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고 전했다.

착한경매는 예비 사회인으로서의 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업의 사회 환원을 유도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주성수<행정자치대학원ㆍ사회복지정책 전공> 교수는 “경매를 통해 사회에 얼마만큼 환원하는 공익적 활동을 할지 계획을 잘 짜야 한다”며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착한경매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기부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젊은 층만의 시도에서 확산돼 사회적으로도 다반사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늘도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착한문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가 착한일상이 돼 가을비처럼 당신의 일상에 스며들기를.

권경하 기자 kyungha@hanyang.ac.kr
이다영 기자 rainyday89@hanyang.ac.kr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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