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 당한 참정권, 민주주의 위기 예고하다
위협 당한 참정권, 민주주의 위기 예고하다
  • 김민지 수습기자
  • 승인 2009.08.30
  • 호수 1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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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가 본 제주도 도지사 소환 투표
나는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귀족파가 아닌 가난한 다수를 위한 민주파의 지도자가 됐다. 또 평의회와 민중재판소, 민회가 실권을 가지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해 민주 정치의 기초를 마련했다.

나는 공무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보수 지급하는 제도를 처음 마련했다. 단순히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국가가 민중을 부양하는 제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내가 추진했던 모든 정책은 ‘민주’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국가의 일을 관리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최근 김태환 제주도 도지사를 대상으로 주민 소환 투표가 이뤄졌다. 강정 마을 일대에 조성할 해군 기지의 반대가 주된 이유였다. 김 도지사는 건설 예정지 결정 과정에서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사안을 무리하게 추진했었다. 이 외에도 영리 병원 도입과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등 도민의 반대로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집고 재추진한 사례가 많았다.

과연 주민 동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민주적일까. 해군 기지 건설이 ‘국책’이라는 중요한 사업인 만큼 더욱 주민 동의와 합의가 선행돼야 하는 법이다. 주민 소환 투표는 청구권자 33% 이상이 투표해야 개표가 이뤄지지만 투표율은 고작 11%로 결국 개표도 못한 채 무산됐다.

물론 주민 소환 투표의 명분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 도민 전체의 공감을 얻지 못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김 도지사가 노골적으로 투표 불참 운동을 벌였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투표 불참, 쉽고 확실”이라며 참정권 포기를 주장했으며 심지어 선관위가 주최하는 토론회도 찬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충성하려는 일부 공무원들과 행정 조직도 투표 방해를 하거나 이를 방관했다. 일부 투표소 인근에서는 ‘투표하지 맙시다’라는 홍보물 수십여 개가 발견됐다고 한다. 지역 신문도 주민 소환 투표의 쟁점을 정리해주기보다 침묵을 택했다.

자치도의 수장으로서 도민들에게 주권 행사 포기를 권유하고 참정권을 위협하는 것은 그릇된 처사다. 부득이 주민 소환까지 오게 된 과정도 민주적이라 할 수 없지만 참정권을 막은 김 도지사의 행동은 아테네 뿐 아니라 지방 자치 제도가 발달한 일본에도 그 유례가 없다.

나는 15년 연속 장군에 선출됐다. 아테네 최고 관직인 아르콘은 추첨제지만 장군은 선출직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지녀 아테네 권력의 실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유례없이 긴 연임 기간 동안 나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기보다 아테네의 번영만을 위해 일했다.

정책 실패 때문에 아테네 시민들이 내게 50탈란톤의 벌금으로 책임을 물은 적도 있었으나 나는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했다.

또 나는 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인 도편 추방법을 두려워했지만 옹호했다. 도자기 파편에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선출해 국외로 10년 동안 추방하면서 나는 행정에서 어떤 독단적인 처사가 없기를 희망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의 요구에따라 모든 정책을 결정하며 그 실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때문에 지도자는 행정체계와 주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야한다. 한국에서도 그 모습을 하루 빨리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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