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APEC 회담을 보며
부산 APEC 회담을 보며
  • 취재부
  • 승인 2005.11.20
  • 호수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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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우 <사회대·정치외교학과> 교수

탈냉전 이후, 새로운 시대적 조류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현상은 아마 세계화일 것이다.

이는 정보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국경을 넘나드는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국가 간의 상호의존이 현저히 심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세계화와 더불어 20세기의 막바지에 나타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현상은 지역통합 운동의 확산이다.

오랜 기간 경제적 불황과 지역통합의 침체기를 겪고 있던 유럽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지역통합에 박차를 가하여 1990년대 초반 단일시장을 완성하고 이후 단일통화를 도입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유럽의 경험에 고무된 다른 지역의 국가들 또한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지역통합을 하나의 대안으로 강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 지역통합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던 것이다.

아태경제협력체(APEC)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탄생하게 된다. 1989년 각료회담으로 출발하여 1993년 정상회담으로 승격된 APEC은 그 동안 기대한 만큼의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대화의 채널을 가동하고, 당면한 현안의 해결을 위한 협조의 경험을 축적해 오면서,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 가운데 두 축을 구성하고 있는 동아시아와 미주지역 국가들 간의 중요한 제도적 연결고리를 제공하고 있다.

총 21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는 부산 AEC 회담의 주제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이다. 이러한 대주제 아래 이번 회담에서는 특히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 회담에서 합의된 보고르 선언의 목표 이행의 의지를 확인하는 부산 로드맵을 채택한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보고르 목표란 선진국은 2010년까지, 나머지 국가들은 2020년까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실현한다는 것으로써, 세계화의 도전에 대해 아태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 그 취지이다.

이와 아울러 이번 회담에서는 도하개발라운드, 반부패, 지식기반경제 혜택의 공유, 인간안보, 중소기업 및 영세기업 지원, 문화 간 이해의 증진, APEC의 제도적 개혁 등의 의제를 중점적으로 토의한다.

APEC 회담은 기본적으로 다자간 국제회의이지만, 아태지역의 모든 주요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기회를 활용하여, 평소 자리를 함께 하기 힘든 각국의 국가 정상, 각료급 인사, 그리고 고위급 관리들 간의 쌍무 회담도 활발히 진행된다.

때로는 다자간 회담보다 이러한 쌍무 회담에서 우리의 국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설령 APEC이 다자간 국제협의체로서의 역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할지라도 회원국들 간의 쌍무적 접촉을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만으로도 의의가 적지 않다 하겠다.

우리나라는 APEC의 창립 당시부터 사실상 산파 역할을 했으며, 그 이후에도 APEC의 각종 회의를 유치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APEC의 발전을 위해 기여를 하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일본 등에 비해 경제력과 군사력 등으로 표현되는 국력에서는 열세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곧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APEC과 같은 다자간 협의체에서의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의 의제설정을 주도하고, 국가들 간의 갈등 해소와 새로운 현안에 대한 해결책 모색에서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국제사회를 위해 기여를 하는 가운데 우리의 국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부산 APEC 회담이 APEC 내에서, 그리고 더 넓은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외교적 위상이 더한층 강화되는 계기로 활용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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