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젊음과 대학
표류하는 젊음과 대학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8.30
  • 호수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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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복 <인문대ㆍ철학과>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캠퍼스는 다시 새로운 활기로 가득 차고 그 분주함을 더해갈 것이다. 한두 해 겪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대학사회를 바라보며 나는 학부교육에 드리워져 있는 엄청난 중압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중등교육에서 유보된 기초교육의 필요성과 사회에서부추기는 전문화의 요구 사이에서 학부교육은 일종의 과부하 상태에 걸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르치는 선생 입장에서도,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도 한정된 교육연한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양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큰 배움의 터전인 대학에서 전통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의 의미는 ‘교양인’과 ‘전문인’ 양성이라는 두 가지 축에서 이해돼 왔다. 그러나 지식정보화사회가 도래하면서 교양교육과 전문교육은 더욱 밀접한 연관관계를 형성하게 됐고 이 두 교육의 기반으로서의 기초교육은 일종의 수학(修學) 능력의 고양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부각됐다. 이제 ‘교육받은 사람’의 의미는 ‘지식의 소유자’에서 ‘지식선별을 통한 문제해결자(Problem-Solver)’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주어진 현안을 명료하게 분석하고 이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이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 이것이 현재 대학에서 강조하는 기초교육의 핵심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초교육이 과연 제한된 학기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이다.

가뜩이나 입시 위주의 중등교육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비판적 사고와 의사소통능력이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제 대학은 교육의 최종경험으로서의 고등교육(higher Education)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중등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대학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회의 전문화 요구다. 기초능력을 골고루 갖춘 창의적 인재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기업의 채용방식은 편파적이고, 단기적이다. 이것은 가뜩이나 지식정보화사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공교육을 더욱더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다. 일상화된 청년실업과 냉혹한 승자독식사회에서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학생들일 것이다. 기초능력과 교양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그것은 한가로운 사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자기체면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회의 지나친 전문화는 학생들의 직업주의와 탐욕, 출세지향주의를 부추겨 그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즉 학교는 일반 교양과목보다는 전문 분야 과목으로 교과과정을 채워버리려 하고, 학생들 역시 대학 시절에서의 배움과 삶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빨리 다음 단계(사회나 대학원)로 넘어가기를 원한다. 대학생활은 그들에게 장애물이었다.” 30여 년 전「미국 정신의 종말」에서 앨런 불룸(A. Bloom)이 지적한 대학사회에 대한 비판은 너무나 가슴 아프게 저며 온다.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 막상 젊은 그들에게는 장애물로 인식되는 현실, 불과 4~5년 뒤에 있을 당장의 삶을 위해 정작 중요한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현실,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의 일꾼보다는 짐이 되는 현실. 지금의 대학교육이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 역시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거창한 슬로건보다 바로 이 같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이다. 최소한 이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돼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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