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손놀림에전 세계가 놀라다
그녀의 손놀림에전 세계가 놀라다
  • 박효목 수습기자
  • 승인 2009.07.25
  • 호수 12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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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와 관객을 아우르는 거장, 지휘자 여자경<작곡과ㆍ96> 동문

여 동문을 만나기 전 사진으로 본 그녀의 모습은 마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지휘자 강마에와 같았다. 단상에 올라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단원과 관중을 사로잡은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녀는 차갑기보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음악가였다.

‘여성최초’라는 수식어, 이제 진부

사진 최서현 기자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지휘봉을 당차게 잡은 그녀이기에 사람들은 실력보다 여성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성을 떠나 실력으로 자신을 평가해달라는 여 동문의 말 속에서 음악가 자체로 인정받고 싶은 그녀의 열정이 느껴진다.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이슈가 되는 것은 진부하다고 봐요.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은 물론 폭도 넓어졌잖아요. 단지 제가 여 지휘자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받기는 싫어요”

그녀는 천상 지휘자다. 공연 후 지칠 만도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오히려 몸이 개운하다고.

“공연이 끝나고 보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어요. ‘언제 이렇게 땀이 났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열심히 한 흔적 같아 내심 뿌듯해요”

작곡에서 지휘로, 자신과 청중을 위한 ‘외도’
그녀는 대학 시절이 즐거웠지만 작곡을 공부하며 생기는 의문 때문에 힘들었다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상한다.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현대음악이란 조성이 없는 음악 즉, 들었을 때 약간 귀가 괴로운 음악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 곡을 작곡함으로써 과연 청중들한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창작가로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가 항상 의문이었어요”

이런 의문 속에서 그녀는 작곡에서 한 발짝 나아가 더 넓은 음악 세계를 맛보게 된다. 학교에서 열리는 오페라나 연주회에서 연주를 하며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오페라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오페라 공부를 위해 대학원은 지휘과로 들어갔어요. 제 자신을 위해 지휘로 ‘외도’를 한 셈이죠. 제 지휘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에요”

아쉬운 3위, 그러나 감사한 성과
여 동문은 지난 4월 러시아 프로코피에프 국제 콩쿨에서 당당하게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욕심 많은 그녀에게 3위는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고.

“사실 3위라는 발표가 났을 때는 씁쓸했어요. 속상하기도 했죠. 이왕 상을 받는다면 1등을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여자와 동양인에 대해 보수적인 러시아에서 그 선입견을 이겨내기 어려웠지만 그것은 음악 앞에서 모두 해결됐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느껴지는 경계심이 대단했어요. 그래서 더욱 긴장했죠. 하지만 음악이 시작되고 점차 경계가 풀어지고 모두가 동화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 되는 선율
지휘자는 단원들과 화합해 음악을 이끌어가는 리더다. 그래서 지휘자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단원들을 지휘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그녀는 결코 단상에 올라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단원들을 존중해주는 것이 그녀의 지휘방식이다. 

“만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 때마다 다르지만 오케스트라마다 갖고 있는 색깔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색깔에 맞춰가면서 지휘해요. 저만의 방식이 특별히 있다기보다 단원들을 존중하며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아요”

그녀는 음악이 갈등을 해결해주고 상처를 치유해준다고 믿는다.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풀기 어려운 숙제가 있더라도 음악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한다.

“음악은 세계 어디에서도 통하는 하나의 언어에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대화할 수 있거든요.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말보다 더 진한 감동을 맛 볼 수 있을 거에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음악
공신력 있는 국제 대회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그녀는 감히 자신을 훌륭한 지휘자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녀는 단지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을 뿐이다.

“좋은 음악가는 스스로 음악을 즐기면서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사랑과 비슷해요. 꼭 필요하고 소중하지만 가끔은 괴롭기도 하니까요”
여 동문은 음악을 할 때, 때론 힘들고 괴롭지만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이 음악가인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랑을 전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가진 능력을 다른 사람들한테도 베풀면서 말이에요. 예술 그 자체를 즐기면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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