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말’로만 하나
이야기는 ‘말’로만 하나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07.24
  • 호수 12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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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촉각, 청각으로 넓어져가는 이야기 방식

어느 광고에서 남자는 아들이 캠프에 갈 준비를 한 모습을 보고 "와우~"하고 환호한다. 그러나 아내도 캠프에 갈 준비를 하고 나타나자 "올레~"라는 소리를 내며 실망한다.
왜 그런 걸까? 광고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남자의 대사가 달라진 이유를 생각해내고 웃는다. 이 광고에서는 시청자가 직접 빈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함으로써 광고를 더욱 재미있게 기억에 오래 남게 했다.

이때 쓰인 기법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디지털시대의 말하는 방식이다. 디지털환경에서는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이나 방법이 이야기 구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게임 「리니지」와 같은 MMORPG 게임이 성행하면서 스토리텔링이 주목받게 됐다. MMORPG 안에서는 게임 유저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대규모 전투처럼 게임 전체의 줄거리를 만드는 과정도 게임 유저들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정해진 이야기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던 기존의 게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사실 청자가 직접 이야기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참여형 스토리텔링의 원형은 80년대 일본 만화 영화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함께 등장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총 26화로 이뤄진 만화영화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서든 임팩트, 사해문서, 롱기누스의 창 같은 아리송한 단어의 설명을 생략하는 불친절한 만화영화였다.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시청자들은 동호회를 만들고 비어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책을 출판했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작사인 가이낙스에 완결판을 제작을 요구했다. 초기 방영당시 시청률이 9% 미만이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극장판에서 대성공을 거뒀으며 새로운 콘텐츠 모델로 자리 잡았다.
옛날에는 화자와 청자가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달됐다. 이때는 화자나 청자의 태도, 상황에 따라 이야기가 시작되고 중단됐기 때문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이 전달하는 방식이므로 표현 방법에도 제약이 있었다. 이야기에 시작과 끝은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탄생했다. 문자로 이야기가 기록되면서 정해진 페이지 안에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발달했는데 이것이 네러티브다.
구비전승과 네러티브가 우리 삶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환경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이야기 구조의 힘이 아닌 이야기 방식의 힘은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반지의 제왕」은 발표 당시 '영문학의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혹독한 평을 받았다. 그러나 웅장히 펼쳐지는 영상과 서사는 현재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해리포터」, 「디 워」, 「반지의 제왕」, 「트랜스포머」등 최근 3년 안에 큰 히트를 친 작품에는 스토리 보다 시각적 언어의 힘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트랜스포머」와 「디 워」를 살펴보면 시각 언어가 가진 힘을 더 강하게 깨달을 수 있다.

박기수<국문대ㆍ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시각 언어가 가진 힘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트랜스포머」를 예로 들었다. 박 교수는 “「트랜스포머」의 줄거리는 자동차가 로봇이 된다는 이야기와 주인공이 악한에게서 도망간다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며 “「트랜스포머」는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없지만 화려한 시각효과로 매력을 발산한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활자 뿐 아니라 영상, 소리 등 다양한 매체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은 즐길 수 있게 됐다. 문화기술의 발달로 앞으로는 촉각과 후각으로도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표현 방식이 범람함에 따라 이를 적절히 활용한 이야기꾼, 스토리텔러의 양성도 시급해졌다. 그러나 국내의 스토리텔러 양성은 평탄치 않다. 스토리텔러들의 대우는 생계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 한류가 불면서 드라마 분야는 대우가 나아졌지만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만화 콘텐츠의 강국 일본의 경우 철완 아톰의 창작자 데즈카 오사무의 과감한 투자로 추리 소설 분야에서 일하던 스토리텔러들이 만화계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 인해 일본 만화계는 탄탄한 작가군을 갖게 됐으며 지금도 그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스토리텔링 전략이 부족하다”며 “양질의 인력 배출을 위해서는 스토리텔러의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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