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 서보영 기자
  • 승인 2009.05.31
  • 호수 12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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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김밥 한 줄 햄, 계란, 오뎅 빼고 싸주세요” 손님의 주문에 아주머니는 의아한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빼고요?” 채식주의를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불편한 식사」의 첫 장면이다. 「불편한 식사」를 제작한 김희영<미디액트ㆍ미디어교육실> 직원은 “누군가에게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왜 안 먹느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하더라”며 “유난 떨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는 주변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채식에 대한 질문에 일일이 답했지만 결국 논쟁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동물이 불쌍하다면 풀은 안 불쌍하냐는 질문에서부터 그럼 고기를 먹는 사람은 전부 야만인이냐는 질문까지 공격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비단 김 직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육류를 먹지 않는 켈리<공대ㆍ기계공학과 06> 양은 “학교에서 다 같이 밥을 먹을 때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며 “매번 설명해야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이유를 말해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채식에 대한 이해부족이 선입견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채식을 하면 영양상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식도 잘못된 선입견의 예다.

이원복<한국채식연합> 대표는 “콩 단백질은 동물성 단백질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채식만으로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며 “그동안 채식주의자의 유일한 결핍 영양소로 알려졌던 비타민 B12는 김이나 미역 같은 해조류를 통해 섭취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과도한 육식위주의 식사는 심장병을 비롯한 성인병과 심혈관 계통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어 건강 상의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강상의 이유 외에도 종교적인 이유, 동물 생명 윤리에 관한 이유까지 복합적이다.
그러나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더라도 실천에 옮기기는 힘들다. 채식하면 보통 소ㆍ돼지와 같은 포유류와 가금류 그리고 생선까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을 떠올리지만 채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비육식을 하되 닭을 먹는 ‘세미 베지테리언’, 생선은 먹는 ‘페스코’,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먹지 않는 ‘비건’으로 나뉜다. 또 비육식을 하지만 우유를 먹는 경우를 ‘락토’, 우유와 달걀을 먹으면 ‘락토오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은 생각보다 적다”며 “단기간에 완전 채식을 하기보다 조금씩 고기 섭취를 줄여가는 것이 채식 입문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채식을 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양념이나 국물 위주의 음식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안 보이는 고기까지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어묵국물을 이용한 떡볶이나 육수가 들어간 냉면은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젓갈양념이 들어간 김치도 마찬가지다. 식당에서 고기를 빼달라는 추가 주문을 하더라도 고기가 섞인 음식이 나올 때가 있다. 주로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만 외식을 할 때는 메뉴선택이 쉽지 않다. 우리학교 식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채식을 하고 있는 박진호<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학생회관 2층 사랑방에는 가끔 고기가 안 들어간 메뉴가 나와서 이용하는 편”이라며 “학교 내 메뉴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는 매주 수요일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 채식인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대웅<서울대ㆍ영어영문학과 01> 군은 “학교 식당에서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며 “채식 하면 산채비빔밥이나 콩국수 등 한정된 음식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다. 의외로 콩 튀김이나 버섯 탕수육, 두부 김치 등 다양한 채식요리가 있다. 다양한 채식요리를 제공하는 채식식당은 채식주의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채식식당이 아닌 일반식당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접할 수 있다. 강 군은 “생명체에게 최소한의 고통을 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채식”이라며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채식이라는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진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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