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가 당신을 구속한다
쓸모’가 당신을 구속한다
  • 손수정 기자
  • 승인 2009.04.12
  • 호수 1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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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의 그림자… 주체가 누군지 분명히 해야


‘코르고다크’라는 말은 ‘계속해서 한 곳에 거주하다’라는 뜻으로 경멸을 나타낼 때 쓰는 몽골어 표현이다. 몽골인들은 한 곳에 거주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여겼다. 이런 유목민과 닮은 신인류가 등장했다. 그들은 옛날 몽골인들과 같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리저리 떠돈다. 다만 그들을 이동하게 하는 요소는 생계가 아니라 전자기기다.

사람들은 유목민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노마드를 이용해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라 부른다. 그러나 박기수<국문대ㆍ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현재 사람들은 디지털 노마드가 야기할 미래에 대해 근거 없는 확신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물결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호모 노마드」에서는 21세기를 노마드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유목이 담고 있는 의미를 공간적인 이동에 국한하지 않고 불모지를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창조적 행위로 인식했다.

'속도의 시대' 속 노마드는 경쟁의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특정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현대인의 필연적인 패러다임인 동시에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주된 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디지털 노마드는 이미 피할 수 없는 물결이 돼가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의 암울한 단면
박 교수는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가 가진 자유에만 초점을 맞추기만 할 뿐 그 이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디지털 노마드는 ‘고단함’이라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유목민들의 거주지인 푸른 초원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무릎까지 오는 수풀에는 메뚜기가 뛰어다니기 때문에 말을 타고 가야지만 길을 떠날 수 있다.

밤이 돼도 늑대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총을 옆에 두고 자야한다.  이렇듯 유목민들은 장소를 옮길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대신 소유를 포기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노마드라는 단어에는 자유와 고단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정착민들이 이런 고단함에는 초점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발전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보다는 일을 더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공간의 제약성을 뛰어 넘었기 때문에 직장인들에게는 심리적인 근거지는 상실된다. 출퇴근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전자기기에 둘러 싸여 있을 수도 있다. 박 교수는 결국 기계의 발전이 쉼과 휴식의 즐거움을 빼앗고 무한 경쟁의 고단한 삶으로 사람을 내 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형 노마드, 허와 실
우리나라에는 디지털 노마드를 낙관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더 많다. 이는 한국의 시대 상황이나 한국인의 기질과 연관이 있다. 한국은 기형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날마다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발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 인식으로 우리나라는 역동적인 민족으로 불리며 실제로 빠른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인식이 한국인들의 디지털 기기, 새로운 것에 대해 맹신하는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 또 정부가 주산업으로 내세웠던 IT 산업 발전의 영향도 한국인 성향을 결정짓는데 크게 작용했다.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에서 손이 꼽을 정도로 잘 돼있어 인터넷은 누구나가 쓸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러나 정보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주체가 없어 싸구려 댓글 문화가 횡행하기도 한다.

통제냐 종속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자는 비움이 있어야 쓸모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비움은 인간이 주체가 돼 만들어가는 시간을 뜻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비움의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  현대인들은 이전보다 몸에 많은 기계들을 지고 다닌다.

정작 필요한 기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신 기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필요 이상의 기계들을 사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기게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기계에 여가 시간까지도 빼앗기는 순간부터 기계와 인간의 종속관계가 뒤집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디지털 노마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인간이 기계에 대한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기계화 된 문화 환경이 만연할수록 내가 그 문화 속에서 주체적으로 문화를 통제하고 있는지, 문화에 종속 돼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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