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가 꿈틀거린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꿈틀거린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4.05
  • 호수 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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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산에 올랐더니 잰 걸음으로 달려오는 봄의 발자국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겨우내 얼고 굳었던 땅을 헤집고 새싹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솟아나고, 죽은 듯 어둡고 칙칙하던 나뭇가지에서도 움이 터 봄기운이 완연했다. 이제 곧 새 생명의 초록잔치가 불길처럼 온 산천으로 번져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의 향연 같은 시낭송회가 요즘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이 바람이 올 들어 더욱 세차게 분다. 초등학생에서 성인에서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시낭송 행사장에 몰려든다고 한다.

산업화 시대에 밥벌이와는 좀 거리가 있는 문학(예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한 동안 외면당해왔는데 지금 놀라운 변화가 일고 있다. 이 현상은 따뜻한 마음이나 아름다움에 대해, 또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삶의 근본이나 생명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남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여간 희망적이지 않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어째서 희망의 징후로 읽힐까? 그것은 오늘날 온 누리를 큰 시름 속으로 몰아넣은 불행의 폭풍이 근본을 망각한 교묘한 상술에서 비롯됐음을 상기하면 아마 조금은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인류에게 닥쳐온 전 세계적인 시련은 정신과 물질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고 이기주의와 속물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내려진 징벌이요 대재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런 재앙의 근원을 은밀히 경고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키팅 선생은 시를 한낱 지적 도구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우리는 시가 아름다워서 읽는 게 아냐.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이지.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지. 의학, 법, 경영, 공학, 이런 것들은 고귀한 것이며 인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해. 하지만 시, 아름다움, 사랑, 낭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인 거야”

이를테면 그의 대사는 학생들이 현상과 본질, 물질과 정신, 또는 수단과 목적을 분별하거나 공유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때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암시한다.

주지하듯이 시는 언제나 우리에게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도록 하고,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 자기 안의 창조적 자아를 일깨우는 구실을 해왔다.

한 조그만 예를 통해서도 그것이 실증된다. 서울시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실행하는 ‘클레멘트 코스(인문학 강좌)’에 들어간 한 노숙자는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자리와 먹을 것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할 여유를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때로는 짧은 시 한 구절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거듭나게 하는 데 두꺼운 윤리 도덕책보다도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욕망과 이념의 과잉시대, 반목과 질시와 갈등과 분열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물질의 향방만을 좇아 무한 질주하는 현대인들이 ‘죽은 시인의 사회’를 두려워할 때 비로소 사회적 갈등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즉 아름다움과 낭만과 무심이 어떤 세속적인 것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한층 성숙된 인식이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우리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은 이룩될 수 있다.

이상호<국문대ㆍ한국언어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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