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젖어드는 그 도시의 매력
느리게 젖어드는 그 도시의 매력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04.05
  • 호수 1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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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상을 놓기 위해 여행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인파에 밀려 쫓기듯이 안내문을 읽으며 돌아다니다가 허둥지둥 버스에 올라탄다. 슬로시티(Slowcity)운동은 자연과 전통문화, 공동체 정신 사이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느린 삶을 구현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운동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들에서 시작된 슬로시티운동은 세계적인 움직임이 됐다. 우리나라도 2007년 전남 4개의 마을이 슬로시티를 선언하며 발걸음을 뗐다.

슬로시티, 어떤 곳인가
하동군이 오는 15일에 슬로시티 선포식을 한다. 6월에는 완도에서 제12회 국제슬로시티 총회가 사흘간 개최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슬로시티운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5군데의 슬로시티가 있다. 완도군, 신안군, 담양군, 장흥군, 하동군이다. 

슬로시티가 되기 위해서는 치타슬로 국제연맹(Cittaslow)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치타슬로 국제 연맹은 슬로시티들을 총괄하는 단체이다. 치타슬로 국제 연맹에서는 24가지 요건을 따져 슬로시티 여부를 판가름 한다. 꼭 만족시켜야 하는 주요 조건 5가지에는 ▲철저한 자연생태의 보호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슬로푸드의 구현 ▲지역주민 중심 ▲특산품ㆍ공예품 보호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어 슬로시티라고 해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을입구까지는 버스와 자동차도 통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마을안의 길은 좁고 꼬불꼬불한데다 돌까지 섞여있어 자동차가 지나다니기에는 마땅치 않다.
밤이 되면 모든 등이 꺼지고 별빛만이 마을을 비춘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만 아니라면 아무도 없는 듯해 더럭 겁마저 든다. 그러나 이 고요함에 익숙해지면 도시의 빛이  공해임을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깊은 잠을 방해하지 않는 슬로시티의 밤은 아늑하다.

 

농어촌의 새로운 활로
현재 우리나라 농어촌은 농업개방화로 시장이 축소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대책을 모색한 결과 중 하나가 농어촌관광 정책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각종 상업 시설을 들여오고 교통의 편의성을 늘리는 등 몰개성한 ‘소도시’만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생긴 상업시설은 농가에 직접적으로 소득을 높여주지 못해 농촌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기존의 취지와도 어긋났다.

슬로시티는 농어촌관광 정책의 대안이 되고 있다. 농어촌 체험이나 전통 체험, 특산물 판매 등에서 발생한 수익은 지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또한 세계적으로 환경친화적 청정지역임을 인정받음으로써 특산물의 판로를 세계로 넓힐 수 있다.

정부에서는 농어촌을 살릴 대안으로써 슬로시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라남도 4개군의 해외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계획을 수립뿐 아니라 외국어로 된 안내책자 작성, 유적 복구 등 지원도 활발하다. 슬로시티를 더욱 더 유치하겠다는 의지도 뚜렷하다. 

그러나 슬로시티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지역민들은 지역의 문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상품화 가능한 마을의 전통을 발굴하고 지켜나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책임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도심에도 숨구멍 트일까
전세계적으로도 아직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슬로시티가 있는 예는 없다. 그러나 한국슬로시티본부 위원장 손대현<사회대ㆍ관광학부> 교수는 “대도시속의 슬로시티도 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슬로시티가 되기 위한 조건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대도시라고 해도 자연과 사람이 살아있는 곳이 있다. 일명 올드타운이라 불리는 오래된 시가지에는 오래된 나무와 한옥, 특별한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많다. 손 교수는 “서울에도 북촌과 같은 올드타운이 있다”며 “이런 도시를 이용한다면 도심의 숨구멍을 트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밝혔다.

한국은 전라남도의 4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슬로시티로써의 발걸음을 뗐다. 한국의 슬로시티들은 아직 시행착오를 거치며 변화하는 중이다. 이미 지정된 5군데의 슬로시티 외에도 한국에는 슬로시티가 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 많다.
손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슬로시티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행복은 경제논리에 희생당해왔다”며 “슬로시티를 통해 삶의 질을 윤택하게 만들면 경제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됨’이 주는 신뢰
슬로시티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는 슬로푸드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전통적인 요리법을 사용해 만든 음식을 말한다. 슬로시티에서 슬로푸드는 전통 요리법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개념까지 포함한다. 

슬로시티에서는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때문에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전통 농법을 사용해 농산물을 생산한다. 전통농법을 사용한 농업은 슬로시티가 되기 위한 기본 요건 중에 하나다. 치타슬로 국제연맹에서는 이 부분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재심사에서 떨어져 슬로시티 자격을 잃게 된다.

슬로시티에 가입된 도시는 국제적으로 환경친화적 청정지역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과 같다. 따라서 슬로시티의 생산품은 친환경적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특산물도 슬로시티의 경쟁력이다. 담양 창평의 창평 쌀엿과 기순도 전통장, 한과 등은 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마을 사람들이 이 특산물을 만드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관광객들은 이 특산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상품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

농업과 어업이 바탕이 된 오래된 마을에는 은근과 끈기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존재한다. 명절이나 축제 때의 화려한 행사는 눈을 사로잡을지는 모르나 관광객을 오래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을 붙잡는 것은 사람들의 진정한 삶이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농촌 생태체험과는 달리 슬로시티는 도시 전체가 ‘보다 인간적인 삶’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슬로시티는 인위적인 모습이 아닌 주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광객의 공감을 얻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자연스레 녹아있는 오래된 마을 특유의 여유는 지친 관광객의 발걸음마저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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