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일관 '한양100년의 꿈'
초지일관 '한양100년의 꿈'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3.16
  • 호수 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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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만 한양인의 요람 한양대학교 서울배움터는 ‘사랑의 실천’을 건학이념으로 배움터를 마련하고자 故 백남 김연준 선생께서 첫 삽을 들었던 1939년부터 출발한다. 70년의 성상이 흐른 올해 총 70개의 건축물의 웅장한 자태와 함께 한양을 박차고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동량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세계를 향한 장대한 꿈을 담은 HYU 2010 Project에 따라 ‘인텔리전트 캠퍼스 구축 사업’의 하나로 한양의 심장인 본관이 새롭게 마련되고 있다. 신본관 완공에 즈음하여, 주변 환경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정문 진입로는 직선화돼 통행 편의와 탁 트인 시야로 마음을 넓혀준다. 진입로 주변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적송들이 한양의 역사와 전통에 걸 맞는 위엄과 품위를 갖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새로운 진입로 설치로 그 동안 서울캠퍼스의 얼굴이자 상징으로 한양의 오욕과 영예를 묵묵히 지키며 그 자리에 있던 구정문과 신정문이 마침내 소임을 다하고 새 시대에 맞는 역할과 기능으로 바뀔 때가 됐다.
한양임을 경계 짓고, 한양인의 지킴이가 되었던 정문은 1964년 1월 22일, 교내 도로포장과 육교 설치에 뒤이어 준공됐다. 1971년 8월 26일에는 육교 철거와 함께 ‘말끔히 단장된 교문’으로 거듭났으며, 1985년 9월 4일에는 ‘스핑크스의 새문’, 신정문이 완공됐다.

무릇 모든 문은 한 영역을 보호하는 방어적 목적으로 경계의 입구에 열고 닫을 수 있는 구조물을 일컫는 말이다. 문은 또한 가장 먼저 만나는 얼굴이요, 지나치면서 친숙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 영역의 상징물이 된다. 본래 정문은 한양인에게 통행의 편의를 제공하고, 학문의 요람인 한양학원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신성한 사명이었다.

지금은 구정문, 신정문, 과학기술관 근처, 성동교 쪽의 후문, 체육관 근처의 동문, 한양대역 통로 애지문, 의료원 정문, 한양여대 정문 등 7개의 통행로가 서울캠퍼스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테에서 세월을 느끼듯이 구정문을 통해서도 영욕과 인고의 세월을 읽어낼 수 있다. 처음 자리 잡은 지 45년이 지나면서 구정문은 중심 문(門)으로서 위엄을 버리고 다른 주변 문들과 함께 영욕을 지켜봤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세계화, 정보화, 개방화를 화두로 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기존의 물리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문화적인 소통이 이어지고 있다. 외부세계로부터 방어적 기능은 웰빙과 유비쿼터스 개념으로 전환되고 캠퍼스 관리의 경영방침은 ‘쾌적하고 안전한 교육환경개선’을 비전으로 ‘고도 정보화 기반캠퍼스 구축’과 ‘안전관리시스템 구축’으로 설정되고 있다.

마침 서울시는 ‘쾌적함을 기반으로 한 감동과 매력을 제공하는 서울’을 지향하며 가로 정비 사업과 녹지조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학교도 이러한 외부세계의 변화에 맞춰 정문 주변부지에 녹지 공원을 조성하고 이를 일반시민에게 개방하기로 하면서 현재의 신정문과 구정문은 부득이 추억으로 남게 됐다.

구정문과 신정문은 쌍둥이처럼 똑 닮은 몸매로 한양의 주체성과 위엄을 높이고,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자리를 내주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다. 구정문은 물론 신정문과도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 우리 한양인은 그 공적을 기리고 아쉬운 마음을 담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실팍한 날개 죽지로 천상으로 비상하여 한양을 영원히 굽어 살피소서’
삼가 그 덕을 기리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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