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평등 사회,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정한 성평등 사회, 아직 갈 길이 멀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03.08
  • 호수 12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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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사회 만들려면 구성원 의식변화가 중요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를 맞아 청계광장에서는 많은 여성단체들과 시민단체가 참여한 다양한 여성관련 행사가 개최됐다. 올해는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된 지 101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행사에 참여한 단체들은 여성인권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진정한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여성대상 성범죄, ‘위험수위’
지난해 미국 국무부에서는 우리나라 여성 1천명당 17.9명이 성범죄의 피해자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성범죄는 강간범죄와 성추행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다. 또 최근에는 여성대상 성범죄가 아동, 노인층까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밤길 다니기 무섭다’는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6일,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민주노동당에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폭력 범죄 신고율은  2~6%에 머무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배삼희<원> 여성전문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성범죄 비율이 높고 실제 처벌 비율도 20% 정도로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라며 “또 신고를 했을 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여성도 많다”고 답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헌법에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예방하는 내용이 없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는 헌법에 2차 가해를 예방하는 조항을 넣어 피해자를 배려하고 있다.
2차 가해란 성범죄 사건 이후 가해자 혹은 가해자가 아닌 제 3자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의해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거나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가해자 또는 제 3자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강선미<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법이 제정돼 있지 않더라도 이를 배려할 수 있는 의식적 관념이 필요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라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경찰이 ‘그 당시에 느낌이 어땠는지’를 스스럼없이 물을 정도로 피해자 배려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경제위기에 된서리 맞은 여성노동
정규직ㆍ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차별 문제는 여성이 노동에 참여한 순간부터 고질적으로 발생해 왔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모집, 채용단계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시작된다. 여성 비서를 모집하면서 구체적 신체사이즈와 촌스럽지 않은 외모를 요구하거나, 입사 동기라도 남성과 여성의 임금에서 차이가 나는 사례가 대표적 예가 될 수 있다.

여성 노동자가 가장 많은 차별을 느끼는 부분은 결혼, 임신, 출산문제다. 이혜순<한국여성노동조합> 사무처장은 “결혼, 임신, 출산을 이유로 회사에 휴직신청을 했을 때 권고사직을 강요하거나 정리해고 대상자로 올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휴직이 끝나고 복직 신청을 했더니 ‘자리가 없어 안된다’, ‘부서를 옮겨 근무하라’는 등의 불이익을 주는 사례는 이제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빈번하다”고 전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느끼는 차별도 더 심해졌다. 선백미록<한국여성민우회ㆍ고용평등상담실> 활동가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난 뒤 여성노동자들의 상담 요청도 증가했다”며 “경제위기 탈피를 위한 기업 구조조정에서 여성들이 우선순위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노동부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차별 요소를 없애고 평등한 고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노동부도 평등한 고용보다 기업의 회생을 위한 효율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선백 활동가는 “지금은 노동부에서조차 경제위기를 이유로 불평등한 고용 현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의 면담을 요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의 안정 고용을 위해 공문도 보내봤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우리학교 여권, 이대로는 위험
우리학교에서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개최되는 관련 행사는 하나도 없었다. 또 이를 알리는 포스터나 표어도 붙어있지 않았다.

안산배움터 총여학생회장 유예슬<공학대ㆍ화학공학과 06> 양은 “아직까지 따로 행사를 개최할만한 여력이 되지 않아 세계 여성의날과 관련된 교내 행사를 열지 못했다”며 “대신 여성관련 시민단체가 지난 8일 개최한 행사에 참여했고 여기서 얻어온 정보들을 오는 18일 열릴 총여학생회 해오름식에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배움터의 경우, 총여학생회가 부재한 상황이고 양성평등센터에서도 아무런 행사 계획을 잡고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규리<과기대ㆍ과학기술학부 09> 양은 “총여학생회와 양성평등센터는 말로만 여학생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면 안된다”며 “각각의 공약이나 설립취지에 맞는 적극적 활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인식ㆍ관심도 여전히 부족
표면적으로 보면 여성 인권은 많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직 여성 비율도 꾸준히 늘어나고, 이번에 새롭게 임용된 여성검사 비율이 50%를 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UN에서 2007년에 발표한 ‘국가별 여성권한척도 순위(GEM)’에서 우리나라는 2006년보다 11단계 하락한 64위이다. 전세계 93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의회여성점유율ㆍ행정관리직 여성비율ㆍ전문기술직 여성비율 모두 상위 20개국보다 낮았다.

강 활동가는 “뿐만 아니라 명절 때 여성들만 일을 하는 것과 부부 관계에서 부인을 집사람, 남편을 바깥양반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여성을 낮게 보는 사회인식 중 하나”라며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인식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인식 변화를 위해 강 활동가는 “세계 여성의날이 오직 여성을 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진정한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날로 생각해 달라”며 “자신이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 내 가족이 차별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대해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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