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노력이 당신을 완성시킵니다”
“꾸준한 노력이 당신을 완성시킵니다”
  • 이유나 기자
  • 승인 2009.03.07
  • 호수 12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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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N 스포츠 해설위원 김세진<체육학과 92> 동문을 만나다


배구가 국민 스포츠로 떠오르던 시절 텔레비전을 틀면 곧잘 나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세진이다. 네트 위로 강한 스파이크를 하고나서 뒤돌아 두 팔을 들고 환호하던 그의 환한 미소는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배구의 규칙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꼬마 팬이었지만 종종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의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설렘을 안고 그의 경기 해설이 있는 대전으로 단숨에 내려갔다. "먼 길까지 오느라 고생 하셨어요" 따뜻한 그의 한마디에 두 시간의 여정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현재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김세진<체육학과 92> 동문을 만나봤다.

행운의 사나이, 김세진
행운은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한다. 그는 1992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태극마크를 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다. “입학하자마자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어요. 시골에서 자란 저에게 한양대 입학 자체만으로도 큰 행운이었어요. 금상첨화로 바로 국가대표로 발탁됐죠” 사실 그는 대학시절, 학교에 머물렀던 시간보다 국가대표로 훈련받은 시간이 더 길다. "봄, 여름, 가을은 국가대표 훈련을 하고 거의 겨울에만 학교에 있었어요" 그래도 여느 대학생처럼 그 시절의 로망을 간직하고 있는 김 동문이다. “왕십리에서 동기들과 술 마시고 함께 축제를 즐기던  추억은 저에게도 아련하게 남아 있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1994년 배구 월드리그 베스트 스타에 뽑히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다. “대학 3학년 시절에 월드리그 베스트에 뽑혔어요. 자꾸 제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아 쑥스럽네요(웃음)” 멋쩍은 그의 미소가 수줍은 소년의 모습 같다.

대학 시절 내내 국가대표로서 큰 활약을 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삼성화재에 입단하게 된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한창 배구가 인기 있을 때 선수로 활동을 했고, 그래서 더 많이 알려졌어요. ‘배구’하면 제 이름을 떠올려 주시기도 하니까요” 김 동문은 사람들에게 인식돼있는 학교의 이미지 덕을 톡톡히 봤단다. “한양대하면 일단 '깔끔'한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덕분에 선수 시절, 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한몫 했답니다”

계속되는 부상 그리고 도전
승승장구하던 김 동문도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다. 부상은 운동선수의 천적이지만 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른쪽 무릎 3번, 왼쪽 무릎 1번, 허리, 발목을 수술했어요. 회복이 안될 때는 주사를 맞으며 경기에 나가기도 했죠.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억입니다” 선수 시절을 회상하는 김 동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제가 언제 그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김 동문은 지금까지도 그 때 받았던 사랑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고백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절 힘들어도 계속 일어날 수 있었던 악착같던 끈기와 집념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있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실력있는 선수들 덕분에도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서로 자극이 되고 독려하는 동료는 많은 힘이 되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학업에 더 충실한 학생으로, 파워풀한 서브를 선보일수 있는 선수로 뛰고 싶다고 대답한다. “사실 제가 서브가 많이 약했었거든요(웃음)”
지난 날을 돌아보며 아쉬웠던 점을 조목조목 말하는 김 동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정말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반짝이고 주목받는 선수로 뛰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이미 김 동문은 충분히 빛나고 있는 선수였음에 틀림없다.

원조 꽃미남 김세진, 그에게 배구란
“운동선수하면 우락부락하고 무식하게 생겼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전 그런 게 싫었어요” 보통 '운동선수'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덩치 큰 사내가 운동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탈피하고 싶었다고 한다. “제가 15년 전만 해도 얼굴이 굉장히 하얀 얼굴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요(웃음)”

멋쟁이 기질이 다분했던 그의 외모는 소위 운동선수답지 않다. 뽀얀 피부에 샤프한 스타일은 절로 ‘오빠 부대’를 형성할 것 같다. “일부러 귀도 뚫고 염색도 했어요. 아마 운동선수 중에서 그렇게 꾸미던 선수는 제가 처음이라고 보시면 돼요” 수많은 꽃미남 선수들의 원조가 바로 김 동문이다. 미남 선수들의 활약이 운동계에 돋보이는 요즘  그의 상황에서는 조금 의아해 할 수 있는 얘기다.

“배구는 ‘나’ 그 자체에요. 배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세진’이 있었고 앞으로의 ‘김세진’이 있을 수 있는 존재의 이유에요” 부드럽게 말하던 그의 어조에서 사뭇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지금은 선수의 길에서 해설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가 계속 걸어가는 길은 배구의 길입니다. 어차피 저는 배구의 길에 돌고 돌게 돼있습니다”

운동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좋은 멘토를 만나 지도받는 일이다. 김 동문은 자신이 좋은 멘토를 만나 훈련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제가 받은 몫은 나눠주고 싶은 맘도 커요. 차차 제가 더 나이가 들면 후배들을 이끌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김 동문은 꿈 많은 욕심쟁이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큰 꿈이 있다면 구단을 하나 창설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어요”아직 젊은 그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해설위원
“몸으로 하던 운동을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더라고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는 벌써 2년차 해설위원이다. “해설위원하기엔 목소리도 곱지 않고 허스키해요. 그만큼 전달력도 부족하고요. 하지만 기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야죠”

자신의 단점을 자신감 있게 헤쳐 나가는 그의 모습이 당차다. 사실 해설위원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고서는 김 동문이 소속돼있었던 팀을 옹호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한양대 출신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자 “해설위원으로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어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하지만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더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넌지시 말한다.

배구계에서 한양대의 위상은 실로 높다. 감독으로 활약하는 김호철, 박기연 등이 있고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석지훈, 최태웅, 진상헌, 한선수 외 20명의 선수들이 있다. 아마 김 동문도 한양대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의문을 갖지 말고 노력하세요”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세요. 중요한 건 목표를 세우는데 재지 말라는 거에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표가 아닌 할 수 있는 만큼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김 동문은 이런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렇게 재는 순간 목표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사고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젊음 아닐까요”

김 동문의 지론은 ‘오늘의 최선이 내일의 결과가 되고, 잘못된 결과도 훗날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동문은 실패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실패한 경험조차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쉽게 이뤄진다면 그것은 목표가 아니에요. 꾸준하게 노력하는 게 중요하죠. 꾸준히, 또 꾸준하게 노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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