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관
사마천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관
  • 손수정 기자
  • 승인 2009.02.28
  • 호수 12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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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있는 역사관이 왜곡 논란 잠재워

한국에 한국현대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교과서포럼이 창설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사기>를 집필했을 때 사료를 정리하고 공정하게 평가를 내리는 일이 쉽지 않았었다. 한국 학계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창설한 교과서포럼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좋은 취지를 가지고 만든 대안교과서가 많은 반발과 지탄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금성출판사 발행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과 이후의 역사를 부정적 시각에서 서술했다. 반면 북한의 건국과 이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중립적, 우호적으로 서술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대안교과서는 일제의 일제강점기 근대화에 대한 기여를 인정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또 대한민국의 현대사(이승만 정부 ~ 제5공화국)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금성 교과서가 죄파적 성향이었던 반면 대안교과서는 우파로 기운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역사관에 일관성이 부족하다. 좌, 우 편향 교과서 속 내용의 맞다 아니다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좌우는 서술의 방법일 뿐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내 역사서 안에서도 개인과 한 시대에 대한 평가를 내린 부분이 많다. 물론 지나치게 현실을 인식한 비판은 객관성을 잃기 쉽다. 그러나 나에게 비판이란 역사적 진실에 보다 접근하는 수단의 일환이었고 역사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일관된 역사관에 근거해 엄숙하고 통렬한 비판의식을 유지하려 했다.

나는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의 5체제를 유기적으로 엮어 새로운 역사 기술 형태인 기전체를 창조했고 사건이나 인물을 기록할 때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역사서 곳곳에 분산해 서술하는 호견법을 구사했다. 나는 호견법을 이용해 각기 다른 곳에서 서술을 분산해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또 사실 여부가 의심 가는 곳에서는 치밀한 고증을 거쳐 가려냈다. 나는 기괴하거나 황당한 설은 아무리 오래되고  내용이 많다 해도 취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대목은 의심스러운 채로 전달하자는 것이 서술의 원칙 중 하나였다. 또 두 가지 설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을 때는 둘 모두를 기록해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과연 지금 한국의 역사 학자들은 역사관 정립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검증된 사료를 통해 역사를 평가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내가 살던 한무제 시대 학자들은 잔혹한 군주 아래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에 메여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사상의 독주와 보수화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었다. 당시 수구적이고 정권에 영합하려는 지식인들이 많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안교과서가 현 정부의 우파적인 성향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 들린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교묘한 정치적 술수인지 묻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여러 사람과 나의 군주였던 한 무제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 선악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 역사 교과서도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일관된 서술을 유지할  필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도움 : 이인호<국문대ㆍ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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