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취업식! 아닌가요
졸업식? 취업식! 아닌가요
  • 최정호 기자
  • 승인 2009.02.21
  • 호수 1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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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스트레스 속 사라진 졸업식의 의미

 2008학년도 전기 학위 수여식이 지난 18ㆍ19ㆍ20일 열렸다. 학창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대학의 졸업식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네모반듯한 학사모와 말쑥한 가운, 부모님의 흐뭇한 표정과 함께 친구와 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은 누구나 바라는 마지막 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청년실업률이 8.2%에 달하고, ‘사실상 백수’가 346만이라는 보도가 연신 터져나오는 현실에서 졸업식 역시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은 졸업식, 그러나…
밖을 돌아다니기엔 부쩍 싸늘한 날씨였지만 ‘마지막 등교’라는 의미 때문인지 여기저기가 분주하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는 그들의 손에는 졸업장과 꽃다발이 들려 있다. 겉보기에는 어느 해와 같이 4년의 성취감이 함께하는 졸업식이다. 그러나 막상 졸업생들의 마음속은 이런 졸업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김유미<디자인대ㆍ영상디자인과 05> 양은 “졸업식이 마냥 기쁘지는 않다”며 기쁘기보다는 시원섭섭하다고 얘기했다. “취업이 됐다면 편한 마음으로 졸업할 텐데 그렇지 못한 채 졸업하게 돼 불안해요. 이번 졸업식도 원래 나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4년을 마무리한다는 의미 때문에 나오게 됐어요”
그녀는 앞으로의 걱정 때문인지 얼굴에 떠오른 씁쓸한 미소를 채 지워버리지 못했다. 김 양은 졸업식에 온 오늘마저도 취업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머리를 정리할 겸 졸업식 이후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번 봄까지 안정된 직장을 찾는 것이 당장의 목표라고.

보이지 않는 동기의 모습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왠지 친구끼리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드물다. 대부분의 졸업 예정자들이 친구보다는 그들의 가족과 그리고 친척과 함께하고 있었다. 동아리에서 선배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는 모습도 눈에 간간히 띄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나마 플랑에 그치고 있었다. 졸업식에는 취업에 성공한 사람만 온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그러나 막상 졸업식에 온 많은 졸업예정자들조차 취업에 대한 고민을 지닌 채 졸업 이후를 걱정한다.
권혁운<공대ㆍ화학공학과 03> 군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졸업식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보다 더 심하네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권 군의 졸업 동기 121명 중 이번 졸업식에 참가한 동기는 81명밖에 안 된다. 보기에는 웅성웅성해 보이는 이 분위기도 과거의 졸업식과 비교하면 참담한 수준이라는 권 군의 말이다.
그는 “대부분의 동기들이 취업이나 대학원으로 길을 정하고 있는데 저는 그렇질 못해서 암담하네요”라며 “취업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안 오거나 길이 정해지지 않아 부끄럽다고 못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최근엔 취업이 안 돼 학업연장을 하는 학생도 많다. 들어올 때는 같이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모두가 다른 우리의 현실이다.
김민정<음대ㆍ관현악과 04> 양은 “졸업하기 싫다”고까지 말한다. 취업 전선이라는 다가올 미래가 너무나도 두렵다고. “학생일 때 학생으로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제는 사회의 최전선에 나가는 입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숨이 막혀와요” 학생으로 남고픈 그녀의 목표 역시 ‘당장은 취업’이다.

취업 = 졸업이라는 현실이 안타깝다
취업을 성공한 졸업생의 경우, 입장이 많이 다르다. 어머니와 사진을 함께 찍던 김형균<언정대ㆍ광고홍보학부 02>군은 입가에서 배어나오는 웃음을 채 감추지 못했다. 김 군은 “졸업이라니 기쁘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크게 바뀌는 게 없어서인지 담담하다”며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업했기 때문에 졸업식에 당당하게 올 수 있었어요. 솔직히 저라도 취업이 안됐다면 부끄러웠을 거예요. 이런 인터뷰에도 차마 대답을 못 했겠죠” 김 군은 “졸업식은 졸업식으로만 남아야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라며 취업이 곧 졸업이 돼가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됐다는 정유민<공대ㆍ화학공학과 04> 양 역시 많은 동기들이 오지 못했다. 썰렁하다 못해 냉랭함마저 느껴지는 졸업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 양은 “졸업식에 와서 즐겁다”라고 답할 수 있었다. “취업보다는 더 오랜 학업을 선택하게 됐지만 이도 차마 선택하지 못한 동기들하고 비교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지요” 그녀는 불경기라는 이유로 졸업을 못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어쩔 수 없다는 게 슬프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보니 졸업식 풍경도 사뭇 다르게 보인다. “더 큰 꿈을 위해 떠나야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라는 연단 위의 목소리 역시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졸업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많다. 졸업식에 처음부터 오지않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인이 되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 지금 졸업식으로 향하는 대학생들의 발걸음 역시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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