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줄 아는 대학생이 되자
생각할 줄 아는 대학생이 되자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2.07
  • 호수 1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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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교수
<사회대ㆍ정치외교학과>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지식을 받아들이기에 급급해 정작 배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다소 소홀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됐다.

이제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에게 물어보는 것은 순간적인 필요성의 수단으로 사용될 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움으로 승화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단순히 배움의 양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중ㆍ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도 일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의 차이는 배움의 체계에서 차이가 난다. 대학의 배움은 학문적 다양성과 자율성, 창의성을 근간으로 한다.

흔히들 대학을 학문의 전당이라고 한다. 학문의 전당이란 학생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고, 자기의 학문을 만들어 가는 배움의 장이라는 뜻이다. 대학에서 배움은 스스로 지식을 터득하고, 스스로의 길을 열어나가는 데 의미가 있다. 그 배움의 길에 선생은 안내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종종 선생님을 가이드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스스로 표지판을 보고 찾아가기보다는 컴퓨터에 물어보듯, 선생님들이 이리저리 길을 안내해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를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선생은 학생들의 학문적 지표일 뿐이다. 가고 물러섬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문적 길은 어떻게 열어나가야 할까? 그것은 끊임없는 사유 속에서 이루어진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던져진 의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얻어진 지식은 위태롭다.

아인슈타인이 운동에너지 법칙을 발표한 다음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관심을 보였다. 한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 할 때였다. 기자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이 발표하신 운동에너지 법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 대단하시군요. 그래 무엇이죠?”
“운동에너지는 질량에너지 × 광속에너지의 제곱, 즉 E = mc2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기자선생께서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
아인슈타인의 질문에 기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기자가 알고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자가 알고 있던 것은 단순한 지식이었을 뿐 진정으로 이해하고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회인이 된 후의 인생은 학기처럼 구분돼 있지도 않고 방학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 하지도 않는다.

사회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며 이를 직장에서는 더욱 가르쳐 주지 않는다. 편하게 얻는 정보를 암기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작은 지식이라도 그 지식의 근원이 무엇인 지를 고민해 보고, 스스로 답을 찾아봐야 한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는 표지판을 보며 스스로 길을 다시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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