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성 삶 강조한 영원회귀 사상
적극성 삶 강조한 영원회귀 사상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8.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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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너는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몇 번이고 되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 문구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계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회귀한다. 영원회귀 사상에 의하면 나는 내 의지로 행동한다고 착각하지만 기계처럼 끊임없이 작동하는 우주의 한 요소로써 필연적으로 행동하게 될 뿐이다. 이 사상은 인간의 삶에서  능동성을 빼앗는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로 능동성을 부여한다. 

모든 순간이 회귀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무게를 부여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수없이 반복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나약한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후회없는 삶을 살 것을 요청했다. 니체는 유럽 문화가 허무주의적 가치를 신성시하는 퇴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나 기독교는 현실세계보다 이상세계를 중시했다. 플라톤은 불완전한 현실 대신 이데아라는 이상세계를 제시했다.

기독교는 현재가 고통스럽지만 절대자를 믿음으로써 미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니체에 따르면 이 사상들은 인간이 현실세계를 부정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방해했다.

니체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신이 부여한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힘에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힘에의 의지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모든 것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형이상학이나 기독교적 도덕과 과학은 진리, 선, 정의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힘에의 의지다.

니체는 모든 가치를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 기여한 정도로 평가한다. 우주 전체가 닫혀 있는 세계이며 양적으로는 변화하지 않고 힘의 상태에 따라 질적으로만 변화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과 기독교적 도덕은 이데아나 신에 모든 권능을 부여하고 인간을 연약한 존재로 봤기 때문에 힘에의 의지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영원회귀 사상은 시간의 구분을 없애 버렸다. 기독교에서는 현재를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로만 보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영원회귀는 일직선상의 시간을 거부하고 순간과 영원이 같다고 주장한다.
영원회귀 사상에서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 니체는 자신에게 영겁의 시간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뤄버리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생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 과거와 현재, 미래도 그렇기를 바랄 정도가 되면 현재를 긍정하게 된다. 현재가 긍정되면 모든 존재는 정당화되고 모든 것은 똑같이 중요하고 필연적인 것이 된다.

니체는 이처럼 현재의 삶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해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을 초인이라 부르며 초인의 삶을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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