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11.30
  • 호수 128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생 자치의 뿌리인 대학 총학생회가 학생들로부터 외면 받는 차원을 넘어 존립 자체마저 위협받고 있다. 상당수 대학에서 단독 출마 후보의 찬반투표로 선거를 진행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아예 무산되는 사태까지 겪고 있다.

우리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안산배움터의 경우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가 단선으로 치러졌고, 서울배움터의 경우 아무도 출마하지 않아 내년 3월 보궐선거로 넘어가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무관심은 자연스럽게 동반될 수밖에 없다. 선거의 전체적인 모습도 해마다 반복되는 색깔론에 대한 논쟁만 벌이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대학 총학생회 선거판이 정치권의 그것과 다르지 않게 된 것은 비단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 비운동권과 운동권의 논쟁은 몇 년 째 계속되고 있고, 총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내세운 공약이 아니라 운동권이냐 비운동권이냐가 됐다.

학생들이 선거에 무관심한 이유도 이 부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지금 총학생회 선거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편 가르기 싸움 말고는 뚜렷한 쟁점이 없다. 딱히 현실가능성을 판단할 만한 매력적인 공약이 전무한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이슈의 장이 되는 우리학교 자유게시판만 봐도 그렇다. 어느 후보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한총련’이란 단어가 나와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유난히 ‘한총련’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들이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물론 운동권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나름대로의 이유는 존재한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대학생의 수는 점점 증가했고,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사회적인 모순까지 겹쳐 대학생들의 관심사는 취업, 학점 등 현실적인 부분으로 변모해갔다. 하지만 운동권 학생회는 과거의 타성에 젖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학생들의 지지를 잃어갔다.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요구만 앞세워 학생들과 괴리감이 생겼고 이는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은 운동권이 아니라는 구호만 외칠 뿐,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제 총학생회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돼버렸다.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색깔이 무엇인지가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총학생회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학생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색깔론은 사회의 화합을 해치는 의미 없는 편 가르기와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를 뜻한다. 온라인에서조차 편향된 논리로 무장한 험한 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다.

다양한 색깔들이 기를 펴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칼라 TV가 나온 뒤부터라고 하니 흑백 TV 보던 시절로 돌아가야 색깔론 좀 없어지려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