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이나 달래며 살아온 내 인생의 반성”
“육신이나 달래며 살아온 내 인생의 반성”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11.30
  • 호수 1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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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밥 나이, 잠 나이」 낸 윤석산<국문대ㆍ한국언어문학과> 교수를 만나다

창가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시인을 만나러 가는 날이라 그런지 날씨마저 기자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 따끈한 새 시집을 발간한 윤석산<국문대ㆍ한국언어문학과> 교수의 연구실을 비에 젖은 신발을 끌며 “똑똑” 방문을 두드렸다. 

“긴장 풀면 세상이 새롭게 보여”
시를 한편 짓는데 보통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 긴 시라고 해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라 짧은 시라도 시상이 안 떠오르면 오래 걸릴 수 있다. 보통 시가 완성 돼가는 것을 익어간다고 표현한다. 「밥 나이, 잠 나이」는 윤 교수의 7번째로 익은 시집이다. 이번 시집엔 특별히 그가 투병 중 쓴 시도 있다.  

“지금은 괜찮아. 아플 때 쓴 시들이 한 열편 가까이 담겨있는데 아플 때는 밖을 잘 못 돌아다니니깐 세상의 일반적 삶이 참 그리웠어. 아픔이라는 고통 속에서 평범한 사실을 평범하지 않게 생각 할 수 있어서 참 소중한 경험이었지”

7번째 시집의 표제 「밥 나이, 잠 나이」는 육십이 넘도록 살면서 바쁘게 산다고 살았는데 결국 밥 먹고 잠이나 자며 육신만 달래며 살았다는 자기반성의 심정을 드러낸다. 윤 교수는 이번 시집을 통해 긴장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깨에 힘 빼고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단다.

“내가 너무 평범해서 잊어버렸던 일들을 긴장 풀고 보니 새롭게 보이더라. 내 삶이 뭐 큰 거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별로 한 것도 없고 남들과 같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더라고(웃음).”

“어느 날 문득 시가 내게 찾아왔지”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터였지. 시에 미쳐서 공부도 안하고 시에 붙들려 겨울산도 끌려 다니고 그랬어. 시는 마치 애인 같아.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흔들어 놓고 조금만 소홀히 대하면 금방 떠나. 그리곤 아무리 손짓해도 안 와. 떠나간 애인 부르듯 굉장히 공을 들여야 해”

그는 짧은 형식 속에 언어와 언어가 부딪치며 만드는 세계가 매력적이라며 시를 ‘언어예술’에 비유했다. 시라면 막연히 어렵다고 느끼지 말고 많이 읽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읽다보면 시어가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언어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미술관에 처음 가면 다른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그림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다. 한번 보고 어렵다하지 말고 계속 음미하다 보면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온다.

한양대학보와의 묘한 인연
그는 본지와 인연이 꽤 깊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였던 80년대 본지의 주간교수를 지냈다. 시대가 어두워 대학신문은 굉장히 사회비판적인 의식을 담았다. 물론 기자는 비판의식을 가져야하지만 그때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었다. 그땐 문화, 예술면도 비판의식으로 보는 게 유행이었을 정도였으니.

“비판적인 건 좋지만 뭐든지 다양성이 존재해야 해. 요즘 한양대학보를 보면 다양한 사회, 교내, 교외, 문화, 예술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좀 더 다양해져야해. 특히 대학생이 너무 취업에 몰두하지 않도록 다양한 문화, 예술을 다뤘으면 해”

그는 본지 주관의 ‘한양문예상’의 시 부문 심사에도 매년 함께 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시의 질은 전체적으로 좋았다는 평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시에는 서정성에서 그치지 않고 서사적 이야기까지 동원돼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선 두 가지의 감성이 필요해. 첫째로 세상을 보는 감성의 눈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언어로 잘 녹여내는 감성의 표출이 있어야 해. 타고난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언어는 인지의 대상이라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시를 즐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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