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ody」가 차라리 폭력인 까닭
「Nobody」가 차라리 폭력인 까닭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1.24
  • 호수 1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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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더걸스다. 「Tell me」에서 시작된 원더걸스 열풍은 「Nobody」까지 지칠 줄 모른다. 그녀들은 소녀시대만큼 예쁘다거나 깜찍하지도 않고 씨야나 브라운아이드걸스처럼 가창력으로 승부를 거는 가수도 아니다.

어리다고는 하나 보아를 생각하면 그리 어린 것도 아니다. 더구나 댄스가수라고는 하지만 그녀들의 춤은 비나 박진영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왜 원더걸스에 열광하는 걸까?
원더걸스 열풍의 원인이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콘텐츠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적 요인으로는 익숙한 복고풍 리듬,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을 강조한 원색 중심의 스타일, 멤버 간의 조화보다는 개성적인 불일치, 쉽고 편안하게 반복할 수 있는 지극히 편안한 B급 감성을 얘기할 수 있다.
외적 요인으로는 「Tell me」 UCC와 박진영의 안무 영상 그리고 발굴부터 데뷔까지의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의 지속적인 제공 등이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Tell me」 UCC는 존 피스크가 이야기했던 ‘텍스트적 생산성’의 실례로서, 향유가 가장 활성화된 상태다. 박진영의 안무 영상은 치밀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지만 또한 개연성 있고 ‘후광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20-30%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의 프로그램 포맷은 ‘포맷의 없음’이다. 특정한 틀이나 형식을 지향하기 보다는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나 방식을 발굴해서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즐기는 지극히 단순한 포맷이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긴장을 이루거나 삶의 의미나 성찰의 깊이를 확보하는 서사의 역할은 「무한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작위적인 중간 이하의 캐릭터 설정, A급/B급의 의도적 대비, 사소하고 무용한 것들에 목숨 거는 상황, 어설픈 계몽, 생경한 조어와 말 줄이기, 유치한 장난, 어이없는 무식을 이 글에서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폭력, 섹스, 유치, 천박 등 주류문화에서 억압된 근원적 욕망을 B급 문화를 통해 배설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성향이야 새로울 것도 없고, 그것이 위협적이라고 하기에는 과장된 호들갑에 가깝다.
강박 없는 즐거움은 문화의 생산 동력이며, 즐거움의 유혹은 딱딱하고 무거운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오히려 신선한 긴장이 될 것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A급이 거세된 B급만의 획일성이다.

  
비보이들의 댄스배틀에서 보듯이, A급 문화의 ‘가치 중심의 서열주의’가 아닌 ‘다름을 전제로 한 진솔한 대중 장악의 퍼포먼스’가 B급 문화의 미덕이라는 점에서 ‘다름’을 전제로 한 ‘다양성’은 필수적이다. 물론 그 다양성은 A급 문화가 될 수도 있고 B급 문화 안의 그것일 수도 있다.


원더걸스의 「Nobody」는 강력한 매혹이다. 다만, 그것은 브라운아이드걸스, 부가킹즈, 빅뱅은 물론 장윤정, 송대관, 조용필과 같은 다양성을 배경으로 할 때에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Nobody」만을 부르며 손뼉을 치는 모습은 그래서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곧 폐지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소중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박기수 교수
<국문대ㆍ문화콘텐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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