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의 한계
「100분 토론」의 한계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11.24
  • 호수 1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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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목요일에 방영되는 「100분 토론」은 수많은 이슈를 낳는다. 치열한 토론이 있고난 후에는 어김없이 각종 포털사이트에 「100분 토론」과 관련된 기사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패널로 나온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은 대중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며, 반응이 좋은 패널들은 곧바로 팬클럽이 생기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사실 「100분 토론」을 날마다 챙겨보는 편은 아니다. 그냥 채널을 돌리다가 평소 관심 있는 주제로 토론을 하면 가끔씩 보는 정도다. 시청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한국 토론 문화의 현주소가 그대로 녹아있다. 

생각해보면, 한 주간의 쟁점사항이나 민감한 이슈들을 놓고 나름의 입장과 논거를 지닌 패널들이 나와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100분 토론」은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특효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따금씩 「100분 토론」의 모습이 ‘진정한 의미의 토론인가’라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사실 「100분 토론」은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100분’이라고 한정돼 있는 시간이 문제다. 물론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공평하게 시간을 배분하겠지만 기초적인 사실 확인이나 개념정리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면 토론은 제자리에서 맴돌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될 만큼 민감한 사안이 결코 ‘100분’안에 제대로 논의될 리 없다. 패널들의 주장과 논거는 시간제약상 사회자의 제지로 잘리게 되고, 수박 겉핥기식의 형식적인 구색 맞추기에 급급해 진솔하고 실질적인 토론을 기대하기 사실상 어려워진다.

또 하나의 한계는 「100분 토론」이 ‘방송’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항상 시청률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 말은 곧, 대중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부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100분 토론」에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올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극명한 사람들을 패널로 놓고 대립시키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대표적 인물이 진중권 씨와 한나라당 의원들이다.
이렇다 보니 「100분 토론」이 사전 각본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패널들을 섭외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내용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저 그 사람의 표현방식이나 미사여구에만 집중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명랑 히어로」는 예능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오히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물론 개개인의 논거나 전문성은 「100분 토론」의 패널들보다 떨어지겠지만 ‘극명한 찬반 대립 구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형식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토론이 반드시 해결책을 도출할 필요는 없다. 논쟁이 펼쳐진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분 토론」이 가진 명백한 한계를 생각하면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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