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자꾸 기교를 부리면 맛이 없어진다”
“연기에 자꾸 기교를 부리면 맛이 없어진다”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11.23
  • 호수 1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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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ing 인터뷰’ 영화배우 이문식<연극영화학과 87> 동문을 만나다

 

학창시절, 영화를 그렇게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또래 친구들과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종종 영화관을 찾았다. 그때 당시 보는 영화마다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중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눈에 띄었고, 관객들을 확 사로잡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이문식이라는 배우였다. 최근 영화뿐만 아니라 시트콤, CF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그의 차’를 함께 타고 가면서 진행된 특별한 인터뷰. 말 그대로 ‘Driving 인터뷰’였다.

그의 데뷔작품은 「초록물고기」다. 하지만 그땐 단역 아르바이트였다. 큰 의미의 데뷔작품은 「간첩 리철진」이었고, 「달마야 놀자」, 「공공의 적」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부터다. 「공공의 적」같은 경우, 그때의 인연으로 몇 달 전 개봉했던 「강철중」에도 출연했다. 그러고 보니, 강철중 역을 맡은 설경구 씨도 우리학교 동문이다.

“경구 형이 86학번이고 제가 87학번인데, 나이는 제가 한 살 많아요(웃음). 다른 대학에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신문방송학과를 가려고 공부를 했는데 주변에서 연극영화학과를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는 뭐 하는 데냐’라고 물었더니 ‘탤런트 되는 곳’이래요. 그래서 탤런트를 한번 해볼까 생각했었죠. 아무리 자기 얼굴이 못났어도 20~30년 정도 보고 있으면 괜찮아 보이거든요(웃음)”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안고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TV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다. 감히 자신이 TV 속에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단다. 한양대로 오게 된 이유도 그때 당시 실기 준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한양대가 상대적으로 실기 비율이 낮기 때문이었다.

“제 인생이 원래 좀 극과 극을 달려요(웃음). 근데 대학이라는 곳에 막상 들어와 보니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그래서 실망을 좀 했어요.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취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학년 말에 우연히 연극을 하게 됐죠. 근데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연극을 시작했어요”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연극은 나의 힘
대학시절, 87년도 당시에는 시대상황이 워낙 어두운지라 많은 대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그때 유명했던 임종석 의원도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서로 얼굴은 아는 사이였단다.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엔 학교식당 밥이 500원이었는데, 친구 둘이 가서 한명만 사서 먹은 다음에 다시 받아서 나머지 한명이 먹었던 적도 많았다.

“연극이 있었기 때문에 견뎠죠.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하고 호흡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왕이었으니까. 명절 때 고향 내려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았어요. 친척 분들이 뭐하냐고 물어보시면, 연극한다고 대답하는 순간부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셨죠. 정신 차리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하셨어요. 홀어머니가 아직도 바느질을 하고 계신데, 아마 집이 지방이 아니고 서울이었으면 못 버텼을지도 몰라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연극하는 것도 불효니까”

영화배우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동료배우에 관한 얘기들이다. 우리나라 배우 중 출연작품 수만 놓고 보면 남부럽지 않은 그다. 수많은 배우들과 함께한 그에게 연기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동료, 혹은 쉴 때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는 없을까.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같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서로 만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그나마 유해진, 오달수 같이 몽타주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는 편이죠(웃음). 그 외에는 거의 못 만나요. 공통적으로 연극을 했던 친구들이고, 코미디란 장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미지 변화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나누곤 해요”

연기를 위해 ‘생니’를 빼다
‘배우란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그에게 있어 배우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표출하는 사람이다. 그에 관한 유명한 일화 하나. 지난 5월말부터 방영됐던 「일지매」를 위해 그는 자신의 생니를 뽑고 나타났다.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경악했던 건 인지상정.

“배우라면 당연히 그래야죠. 예전에 「다모」에서 맡았던 역할과 비슷해서 뭔가 차별성을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니를 빼면 캐릭터가 좀 달라질 것 같았죠. 옛날 캐릭터와 계속 겹치게 되면 그건 스스로가 견디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나름대로 많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예요. 물론 치과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죠. 생니를 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엔 ‘임플란트’라는 게 있어서 반영구적으로 다시 복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조연’하면 생각나는 사람에 손꼽히는 그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있다. 조연배우의 대명사인 그에게도 주연배우라는 꿈이 있지는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거기에 맞는 그릇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농촌 총각이 장가 못가는 이야기라면 저 같은 배우들이 주연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압구정동에서 커피 마시는 멜로라면 제가 하면 안 되겠죠. 나름대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저마다의 캐릭터라는 게 있으니까. 조연배우라고 하면 ‘배우’로서 인식이 될 뿐이지 ‘주연’이다, ‘조연’이다는 저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사실 그에게도 ‘주연배우’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외면 받은 작품들이 훨씬 많았다. 코미디를 한다고 해서 항상 코미디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멜로도 하고 싶고, 다른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은데 이미지라는 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시나리오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걸 감수하고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했을 때 결과적으로 흥행이 받쳐주지 않으면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마파도」빼고는 다 망했죠(웃음). 사실 주연, 조연을 가리지는 않았는데 잘 안됐어요. 물론 작품에도 문제가 있었겠죠. 누가 나오든 작품이 재미없으면 외면 받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게 드라마로도 이어졌죠. 그때는 멜로하려고 머리도 길렀었는데 「주몽」이라는 큰 작품을 만나서(웃음)…사실 지금도 겁이 많이 나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부지런히 노력을 하지 않고 게을러지면 금방 표가 나거든요. 게으른 배우와 게으르지 않은 배우는 분명 많은 차이가 나니까”

이문식은…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나 1987년에 우리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영화, 드라마, 시트콤, CF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2004년엔 한국 영화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출연작으로는 영화 「달마야 놀자」, 「공공의적」, 「마파도」 등 다수가 있고, 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 「일지매」 등에도 출연했다. 현재는 'LG텔레콤 OZ' CF와 MBC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에서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연기는 항상 날 것이어야 한다”
배우라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게 맞지만 요즘 같이 영화시장이 좋지 않을 경우엔 모험을 감행하기가 쉽지 않단다. 누구보다도 바쁜 생활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는 배우로서 정말 행복할까. 

“일상의 이문식은 경제적으로 나아졌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죠. 하지만 배우로서는 뭐라고 얘기하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연극할 때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사람이 가진 게 없으면 무서워져요. 물탱크 청소하고, 국수 배달하고, 신문 배달하면서도 무대에 선다는 그 희열 하나만으로 살았어요. 그때가 IMF 즈음인데, 500원이 부족해서 라면을 못 먹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만큼은 누구 앞에서도 두렵지 않고 당당했어요. 그때는 오로지 모든 관심사가 연극이었으니까”
그때보다 경제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지금은 스케줄, 개런티, 이미지 관리 등 고민해야할 게 너무 많아졌다. 한 곳에만 집중했던 그때가 오히려 더 처절했다. 한 캐릭터를 잡으려고 발버둥치고 술 먹고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니.

“지금도 많이 고민하긴 하지만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아내의 남편이기 때문에 그 생활도 영위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때보다 노하우는 늘었겠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는 생각 중 하나는 연기는 항상 날 것이어야 한다는 것. 연기에 자꾸 기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맛이 없어져요. 항상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일이어야 해요. 그래서 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죠”

“가슴이 느끼는 대로 행동하길”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바로 “통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배우로서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기를 해봤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 할 것 같단다.

“연기라는 게 허상을 쫓는 건데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묘하게 멀어져요. 어떤 야구 해설가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야구선수가 어깨에 힘을 빼는데 10년이 걸린다고.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는데 공이 눈앞에 오면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거죠.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평상시엔 부드럽게 하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잘하려고 긴장을 한다는 거죠. 영화를 하던 뭘 하든지 간에 ‘정말 후회 없이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 만한 작품이 한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불가능에 도전하는 거니까. 사회도 좀 정의로워졌으면 좋겠고…세상이 점점 각박해져서 어휴…돈에 휘둘려서 사람 사는 맛이 없어진 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해요”

2008년을 사는 대학생들에게 이 동문이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미쳐서 해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 삶은 누구라도 행복할 거란다.

“연애에 미치든, 독서에 미치든, 사회를 구하기 위해서 혁명에 미치든,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가슴이 느끼는 대로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나이 먹으면 머리로 계산하는 일이 많아질 테니까.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 비해 요즘엔 가슴들이 많이 식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요.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을 때 많은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직 공부한다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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