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가을 여행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0.12
  • 호수 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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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의 배경이 된 봉평을 다녀왔다. 25년 전에 ‘작가생가 보존회’ 회원으로 그 곳을 찾은 이래 몇 번을 다녀왔지만 갈 때마다 메밀꽃 피는 계절이 아니어서 항상 아쉬움만을 안고 돌아왔었다. 이번에 작정을 하고 메밀꽃 축제가 한창인 봉평을 다녀왔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허생원이 하룻밤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과 ‘하얀 소금이 뿌려진 듯한’ 메밀꽃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난 동이의 등에 업혀서 허생원이 건넜던 개울을 건너보기도 하면서 그동안의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메밀꽃이 만개한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친구와 속내 이야기를 나누면서 40년의 편견과 오해를 벗고 우정을 돈돈히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함께 여행을 간 친구는 서울로 가는 버스가 하루 3대 밖에 없고 전기가 없어서 등잔불 아래서 공부하던 시골 중학교 친구다. 예쁘장하고 도시적인 외모를 지닌 그 친구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 않고 혼자 행동을 잘해서 친구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20대에 동창회에서 한 번 만났을 때나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혼자인 듯 행동을 해서 다른 친구들만큼 가깝지 않았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겉으로 보이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게 되면서 아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리의 속내 이야기는 메밀꽃 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그 친구의 이야기 중에서 처녀시절 추억이 없어서 너무나 아쉽고,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꽂혔다. 그 친구는 어려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 사는 외삼촌 집에서 가정 살림을 해가면서 직장을 다니느라 시간이 없고 눈치도 보여서 친구들을 마음 놓고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나만의 시간이 너무나 갖고 싶어서 지방에 기숙사가 있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일을 잘한다고 서울에 있는 본사로 발령이 났을 때에는 정말 운이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코끝이 찡해왔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어머, 그랬었구나’. ‘그랬니?’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친구와 마음의 거리를 좁히면서 혹시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고 판단해서 상대방을 오해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경우는 없었는지 과거의 일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이제 가을 단풍이 시작된다. 친구 또는 연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원한다면 가을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대학에는 여행의 3가지 즐거움 즉, 보고 듣고 먹는 즐거움이 잘 어우러진 고품격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안산학술정보관에서 진행하는 문학기행인데, 작가의 생가 및 문학관과 작품의 배경이 된 곳, 그리고 주변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문학 및 역사 전문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또 하나는 박물관의 유적답사로서 유물 발굴 현장을 직접 보면서 진행과정이나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하다. 이 두 프로그램은 다른 여행 프로그램의 절반 정도 비용으로 고품격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데서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장석례<안산학술정보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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