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뭘 먹고 사나
우리는 이제 뭘 먹고 사나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10.12
  • 호수 12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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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신문사만큼 배달음식을 많이 먹는 곳도 없다.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평일엔 각종 회의나 취재 등으로 많은 시간을 신문사에서 보내야 하고, 기사 마감과 조판 작업 때문에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때도 있다. 심지어 매주 신문사에서 상주하는 기자들도 있다.

게다가 신문을 만드는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밥을 먹으러 나갔다 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난 8일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 방영한 ‘대학 앞 식당 위생 상태 점검’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긴 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학교 앞 왕십리 음식점들이었다. 평소에 자주 시켜먹던 음식점도 있었고 메뉴판을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음식점도 있었다.

워낙 오래된 음식점들이고, 평소 왕십리의 환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라 완벽한 위생 상태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음식점들의 모습들은 ‘원효대사의 가르침’을 실천하기엔 너무 역겨웠다.
조리도구들은 사용한 후에 그대로 방치돼 한 눈에 봐도 불결했고, 주방에는 파리가 득실거렸다. 심지어 바퀴벌레도 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화를 내는 가게 배달원의 당당한 모습은 뻔뻔하기까지 했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방송이 나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음식점의 실명을 거론하며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학생도, “푸짐한 인심과 음식의 위생상태가 반비례라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방영되는 장면들을 보며 과거에 그 음식점에서 먹었던 것들을 모두 토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위생 상태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믿음’은 있었을 테니까.

작년 6월, 안산배움터에서도 학내 매점에서 판매하는 김밥 때문에 3백여 명의 학생들이 집단 식중독에 걸린 사건이 있었다. 물론 음식이 잘 상하는 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건 관리 소홀 문제였다.
더욱 황당한 건 방송이 보도된 이후에도 문제의 음식점들은 태연하게 음식배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을 못 본건지, 안 본건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음식 위생 상태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아직도 뻔뻔한 걸 보면 양심 따윈 잊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사실 이번 신문을 만들면서도 어김없이 배달음식을 먹었다. 방송에 보도된 음식점은 아니지만, 괜한 의구심마저 든다. 비양심적인 몇몇 음식점들 때문에 깨끗하게 운영하는 다른 음식점들까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좋은나라 운동본부」 게시판에는 “방송 이후 장사가 안 된다”며 항의하는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청결하게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선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밖에선 멜라민 파동이 한바탕 뒤집어 놓더니, 이제는 학교 앞 음식점이 난리다. 뭐 하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세상이다. 아, 하나 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음식, 어머니가 해주신 밥뿐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해주신 밥만 평생 먹을 순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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