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매트릭스
2008 매트릭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9.28
  • 호수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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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입학처ㆍ입학과>

1999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 ‘매트릭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은 꽤 있을 거다. 영화 속 주인공 ‘네오’는 현실로 경험했던 세상이,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만들어 낸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평온하게 보이는 일상의 모습은 컴퓨터가 개개인의 뇌세포에 입력한 가상 현실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큐베이터에 갇혀 그저 에너지원으로 활용당하고 있는 인간의 끔찍한 실상에 눈을 뜬 네오는 자신과 같이 가상 현실의 꿈에서 깨어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가상 현실과 현실을 오가며 컴퓨터 시스템에 대항한다.

‘매트릭스’에서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은 바로 결말부라 할 수 있다. 총에 맞아 죽은 줄로만 알았던 네오가 다시 일어났을 때, 이제 그에겐 매트릭스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입해 화면이 깨지듯, 조금 전까지도 건물 내부로 보이던 것들이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프로그램 화면으로 바뀌어 버리고, 네오 일행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적의 공격도 모두 무위에 그치고 만다. 가상 세계의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 막강하게만 보였던 적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한 해 두 해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매트릭스’의 이 마지막 장면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현실이 때때로 허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건물의 구조가 디지털 숫자로 바뀌어 보이듯, 그럴듯한 일상의 모습들이 어느 순간 굉장히 연약한 실타래로 짜인 것처럼 보일 때면, 믿고 있던 누군가에게 크게 속은 것같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이처럼 세상이 허점을 보이는 순간을 아주 잘 포착해 냈다. 그의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에 등장하는 비평가는 한 여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재능은 있지만 깊이가 없다’는 평을 신문에 실어 결국 작가를 자살에까지 내몰았다. 하지만 번뇌 끝에 자살한 동일 작가의 작품에 대해, 그 비평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작품에선 초창기부터 굉장한 깊이가 느껴졌다’는 평을 남기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바로 이 콩트 같은 이야기가 곧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이 세상이 지닌 허점을 잠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허점을 잠깐 드러냈다고 해서, 다시 깨어난 네오처럼 갑자기 매트릭스 프로그램 안의 적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그게 영화와 현실의 차이다. 오히려 때로는 네오 일행을 없애고 가상현실을 완벽하게 유지하려 했던 스미스 요원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목소리가 들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의 실체는 그게 아니라고, 껍데기뿐인 현실을 직시하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이 승부에 승자와 패자가 있기는 한 걸까? 2008년,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대결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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