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려해도 시는 내게 운명이었어”
“멀어지려해도 시는 내게 운명이었어”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8.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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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상 시 문학상’ 수상한 이승훈<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만나다

▲ 이승훈 교수는… 1942에 출생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재는 한양 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 명예교수, 시인, 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1963년 <낮>, <두 개의 추상>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한국 시인 협회상, 2007년에 ‘김삿갓 문학상’, ‘심현수 문학상’, 2008년엔 「모두가 예술이다」로 ‘이상 시문학상’을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글을 쓸 때는 잔뜩 예민해진다. 하물며 감정을 농축하고 다듬는 작업을 하는 시인들은 어떨까? 그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시인, 문화평론가, 교수 등 30년간 쉴틈 없이 열정적으로 문학 활동을 해온 이 교수. 냉철하고 가차 없는 평론, 짙은 고독이 묻어 있는 시부터 일상이 햇빛처럼 녹아 있는 시까지. 갖고 있는 모습이 다양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원 강의를 마친 후 빈 강의실에 단아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떠오른 인상은 단 하나, 시인이었다.

 

「아침」으로 시작된 이상과의 인연
‘제1회 이상 시 문학상’ 수상.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받아온 그지만 이번 수상의 감회는 특별하다. 그를 시의 세계로 이끈 것이 이상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에 이상의 「아침」이라는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았어. 식민지 시대의 병든 청춘의 내면을 노래한 시였지. 당시의 내 어둡던 가정환경, 사춘기 때문인지 크게 공감했었어. 그 시와 만났던 것이 내겐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그는 지금까지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노래하는 작업을 해 왔다. 자연은 아름답다. 자연을 노래한 시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는 황폐한 풍경이더라도 내면을 그리고 싶었다. 그 점에서도 이상과 이 교수는 닮아 있지만 많은 한국 현대 시인들 가운데서도 그가 이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정신과 치열한 고민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리운 그 이름, 박목월
그는 고교 시절에도 잡지에 시를 게재하고 강원일보의 시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학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문학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그의 집안이 의사집안인 이유도 있지만 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시는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학을 전공하면서 틈틈이 쓴 시를 박목월 선생께 보여 드렸고 2학년 때 국어국문과 전과를 권유 받았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3학년에 휴학을 선택 했다.
“대학 3학년 때는 정말 힘들었어.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공부를 계속 하기도 힘들었고 공학도 나와 맞지 않고 새로 출발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내 문학적 대부를 이상이라 한다면 인생의 대부는 박목월 선생이야. 박목월 선생이 나를 문단에 올렸고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지”


박목월 선생은 이 교수가 보여줬던 시 가운데 두 편을 골라 「현대문학」에 추천함으로써 그를 등단시켰다. 박목월 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교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번 수상작 「모두가 예술이다」에서는 박목월 선생에 대한 이 교수의 그리움이 담담하게 묻어나온다.


“자꾸 생각이 나. 이 시의 초반부는 올해 3월에 박목월 선생 묘를 찾아 용인에 갔을 때, 용인 묘지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나눈 대화 그대로지. 후반부는 대학 시절 목월 선생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회상이고”
박목월 선생의 경상도 억양을 흉내내 시의 한 구절 ‘이군이가? 훈이가?’를 흉내내보는 이 교수의 눈은 아련한 그리움에 젖었다.

 

독백은 일종의 폭력, 대화를 시에 녹여내다.
「고향가게」,「봄날」,「잡채밥」,「담배」 등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최근 시에는 일상과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많다. 소재 뿐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까지 시에 등장한다. 일반적인 서정시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다.


“많은 서정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인의 독백이지. 혼자 모든 세상을 이러니 저러니 설명하는 건 폭력인 것 같애. 대화를 시에 드러내는 것은 그야말로 하찮은 일상을 그대로 옮기려는 실험이야”
그는 끊임없이 변하고 싶어한다. 문학은 기존의 문학을 부정하면서 비로소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를 현실과 관계없는 환상의 세계로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일상과 가까운 시를 만들고 싶었다. 시에 대화를 등장시키는 수법은 그가 고민 끝에 찾아낸 결과물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시인들은 소수야. 아무래도 새로운 스타일의 시를 쓰거나 남들이 노래하지 않은 것을 노래하는 시인들에 관심이 가지. 꽃은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노래했어. 하지만 주전자를 노래한 사람은 별로 없잖아. 오늘을 살아가면서 자신들만이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야. 그것을 하라는 거지. 남들이 했던 것 하지 말고. 지금 김소월처럼 시 써서 되겠어?”

주어진 삶,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내일은 알 수가 없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과목이 좋다면 그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거지 뭐. 요새 사람들은 너무 목적을 만들어 살려고 하니까 안타까워”


그는 작년 1월에 위암을 선고 받았다. 수술 결과가 좋아 지금은 대학원 강의도 출강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건강에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의 시에 대한 사랑은 건강에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시는 인생이다. 그는 시를 사랑한다. 오늘도 내일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봐도 시는 계속 존재해왔어. 표현양식이나 매체가 달랐을 뿐이지. 문학이나 예술은 옛날이나 지금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거야. 과거처럼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예술, 문학, 철학이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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