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스타, 그리고 강초현
올림픽 스타, 그리고 강초현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09.01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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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려했던 일이 기어코 터지고야 말았다. 올림픽의 즐거운 여운이 남아있을 무렵, 방송사들은 어김없이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지난달 27일,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이용대 선수의 출연분이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것이다. 그것도 국가대표 선수단이 귀국한 지 불과 이틀만의 일이다.
이용대 선수뿐만 아니라 유도 최민호, 역도 장미란 등 다른 선수들도 공중파 방송 출연을 앞두고 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방송 출연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방송사들은 올림픽 스타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물론 올림픽에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선수들을 자사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려는 유혹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이용대 선수는 더욱 그랬다. ‘훈남’과 금메달. 미디어가 열광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방송계와 연예계의 성격을 잘 모르는 선수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인기 앞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딱 봐도 운동밖에 모를 것 같은 ‘순둥이’들이다. 4년 동안 눈물과 땀으로 고생할 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금메달을 딴 순간부터 달라진 이들의 태도에 선수들이 적응한다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책임은 선수 자신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다. 하지만 운동밖에 모르는 선수와 가족들이 방송계와 연예계 등의 집요한 요구를 견뎌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결국, 선수들을 보호해 줄 책임은 시청률 경쟁을 하는 방송사와 선수들을 기업 홍보에 이용하는 기업체,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있다.

강초현 선수를 기억하는가. 그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사격 은메달 2000년 애틀랜타 월드컵 국제사격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었다. 그 이후 그녀는 순식간에 대스타가 됐고, 인기는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다. 미디어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수많은 이슈를 양산했다.

하지만 그녀는 과도한 관심 탓인지, 전국체전 결선에서 꼴찌를 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꼴찌를 하고난 후 울먹이면서 했던 그녀의 말이었다. “제발 저 좀 놔주세요”
각종 언론 매체에 헐뜯긴 그녀는 그렇게 잊혀졌다. 경기력이 떨어지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미디어들은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대중은 곧바로 또 다른 스포츠 스타를 찾기 시작했고, 역사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운동선수가 연예인 대접을 받으며 각종 방송 매체에 과도하게 오르내리면, 운동의 호흡을 잃어 자칫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다. 또한, 미디어의 달콤함에 빠져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동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
“운동선수가 운동이 아닌 일로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냉정한 판단을 내린 박태환 선수가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얻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방송계와 연예계는 진정으로 선수들을 염려하지 않는다. 미디어가 올림픽 스타를 집중 조명하는 이유는 그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긴장된 경기장 속에서 멋진 경기를 펼치는 운동선수로서의 모습인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인가.
불과 며칠 전까지 TV앞에서 손에 땀을 쥐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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