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외침, "전 어떻게 해야 하죠?"
소리 없는 외침, "전 어떻게 해야 하죠?"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8.08.30
  • 호수 127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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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성희롱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해결책 필요

<사례> 여름농활에 참여한 A양은 잠을 자던 도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이상한 느낌의 정체는 바로 A양 옆에 누워있던 남자 후배의 손. 남자 후배는 잠자는 A양의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A양은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다 잠에서 깬 척, 인기척을 내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A양이 인기척을 내자 후배 남학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시 자리에 누워있다 밖으로 나가버렸다.

2001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조사한 대학 내 성희롱 실태에 따르면, 대학 내 성희롱 사건 중 60%가 학생-학생 유형의 성희롱이고, 30%가 교수-학생 유형의 성희롱이었다. 학생-학생 유형의 성희롱은 동기에 의한 피해보다 선배에 의한 피해 사례가 더 많이 조사됐다.

성희롱이란 무엇인가
노동법에 속해있는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한 4가지의 요건이 기재돼 있다. ▲성희롱의 대상자와 가해자가 모두 있는 경우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이 있을 것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인 언어적, 육체적 행위 등으로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것 ▲학업이나 고용상의 불이익을 초래하거나 성적 굴욕감을 유발해 학업 또는 고용 환경을 악화시킬 경우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희롱의 성립 요건뿐만 아니라 성희롱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동도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하지만 너무 구체적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선백미록<한국여성민우회ㆍ고용평등상담센터> 활동가는 “구체적 조항 이외의 방법으로 성희롱을 했을 경우 관련 법 조항이 없음을 근거로 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며 “성희롱의 법제화가 10년을 맞이한 만큼 이런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와의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녀 고용 평등법에서만 정의된 ‘성희롱’
성희롱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예시가 남녀고용평등법에만 존재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학교 내에서 교직원 간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노동법을 통해 성희롱의 요건과 방법을 판단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학생, 교수-학생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의를 적용시키기 힘들다. 교직원이나 교수는 학교에 고용 돼 노동법을 바탕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학생은 고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학생 간의 성희롱, 교수-학생 간의 성희롱의 상담 건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학교 양성평등센터는 성희롱을 ‘상대방에게 성적인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나 신체적 접촉’으로 단순히 정의하고 있다.

성희롱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남녀고용평등법에만 명시돼 발생하는 문제점은 또 있다. 사회 곳곳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성희롱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성희롱의 개념이 지나치게 넓어진 것이다.

선백 활동가는 “어떤 행위를 성희롱인지 아닌지 제3자의 입장에서 단정짓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당사자의 지나친 확대 해석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다”며 “상담가의 입장에서 성희롱보다 좀 더 하위개념에 있는 새로운 단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교내 성희롱의 문제점과 해결
직장 내 성희롱과 마찬 가지로 교내 성희롱도 알고 지내던 사람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피해는 상당하다. 실제로 교내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은 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휴학이나 자퇴를 결심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노영주<양성평등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를 “교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학교 주변에서 성희롱 피해 사실을 떠올릴 수 있는 요인들과 쉽게 마주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내의 성희롱 상담센터 기능이 위축돼 있는 것도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교내 상담센터와 그 구성원들이 학교에 소속돼 있어 학생들이 상담센터의 문을 쉽게 두드리지 못한다. 자신의 상담 내용이 학교 측에 알려져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해서다. 특히 교수에 의해 성희롱을 당한 학생들의 피해 접수가 가장 미미한 편이다.

교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 문제에 대한 학칙이 학생들에게 널리 공고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칙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선백 활동가는 “이전에 성희롱에 관련한 학칙 개정을 유도하기 위해 대학생들과 함께 ‘반 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을 펼친 적이 있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학칙 자체가 학생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못하는 점이 가장 한계였다”고 말했다.

교내 성희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 선임연구원은 “모두가 식상하다 생각하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과 배려”라며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이나 성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일단 한번 들어 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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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8:37:29
이 글은 교내 성희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명확한 정의와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희롱에 대한 법적인 정의와 학교 내 성희롱 상담센터의 기능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학생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성희롱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과 배려가 중요하며, 성교육과 성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