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그늘
무지의 그늘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5.25
  • 호수 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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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오랫동안 장식품에 불과했던 라디오에 다시 손이 간다.

살아내야 할 날들을 고민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던 낯익은 노래들이 다시 전파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인기가수들이 예전 노래들을 리메이크하고, 리메이크된 노래를 들고 데뷔한 가수들이 가요차트 상위에 등장하기도 한다. 일시적이지만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그 노래들을 듣던 시절의 나 자신으로 돌아간 듯하다.

기억 속에 아스라한 단어들. 그리움, 안타까움, 설렘, 순수,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 그러다 문득 원숭이 눈에는 원숭이만 보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그리 길지 않은 대학에서의 삶 속에서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의 전공 속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성향과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바쳐 고민하고 뭔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삶 속에서 체득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집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타인에게도 강요한다. 자신이 배우고 연구하는 이론만이 세상을 설명하고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진지한 검토 없이 무시하기도 한다.

필자와 같이 다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그 학문적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법학을 전공으로 하는 입장에서는 필자는 법학자가 아니라 의학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그런데 원래 공부라는 것이 그렇게 좁은 땅따먹기였던가. 학문에서의 순혈주의는 이러한 ‘하나의 시각’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한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집’을 짓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집’이 하나의 기둥만을 가지고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다면 그 집은 쉽게 무너져 내리고 세상을 더럽히는 쓰레기들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하나의 시각만을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시각은 무시하는 대학인들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산을 오를 때 우리는 다양한 장비를 필요로 한다. 지나치게 많은 장비는 짐이 될 뿐이지만 하나의 장비만을 가지고 모든 산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이거나 만용이다. 오르고자 하는 산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가지고 가야할 장비가 결정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에 따라 오를 산을 결정한다면 오를 수 있는 산만을 오르는 것이다.

 학문적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의 입맛에 맞는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각에 적합한 것만을 보고 그것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산물이거나 만용의 결과일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가장 앞에 서서 산을 오르는 리더들이 하나의 장비만을 고집할 때다. 이러한 고집은 자기 자신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다.

하지만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무지로 인해 용감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위장복을 입는 경우가 많음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경험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러한 무지와 위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정규원<법대ㆍ법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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