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소년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 정혜인 기자
  • 승인 2008.05.25
  • 호수 1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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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안개 속 피어난 그리움」 발간한 시인 김부겸

성신여대 근처 ‘태극당’이라는 빵집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시인이 된 수위 아저씨’란 타이틀을 갖고 계신 김부겸<서울시ㆍ성북구 67>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 8년 전 본지 선배기자가 그를 인터뷰했던 바로 그 곳입니다.

“2000년에 한양대학교 신문사에서 찾아 왔었어. 그때도 이곳에서 만났었지.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된 거야. 그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8년이나 지났네”라며 반갑게 반겨주십니다.

아저씨는 첫번째 시집인 「청춘에서 황혼으로」를 발표한지 벌써 5년이 흘러 두번째 시집인 「안개 속 피어난 그리움」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시인으로 만들어주고 시를 계속해서 쓰게 해주는 것은 모두 학생들 덕분이라고 입을 여십니다.

아저씨는 고려대 홍보관에서 수위를 맡고 있을 때 시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학생들을 보며 뭔가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에게 첫번째 시상을 안겨준 장면은 ‘비오는 교정’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때 학생들이 하나도 없는 교정에 있었어 비가 주룩주룩 오고 가로등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는데 시를 쓰고 싶어지더라구”
                                                
 학생들이 만들어준 시인

“홍보관에서 수위로 근무 할 때 시를 쓰고 있는데 고대신문 편집국장이 뭘 쓰고 계시냐고 묻더라고,시(詩)라고 예기해주니까 신문에 싣고 싶다고 했었어”

부족한 점이 많아 극구 사양했지만 그는 99년 「별이 되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시를 게재한 후 그 다음해 같은 곳에 수필을 싣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보에 몇 번 글이 실리니까 여러 언론사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싣고 나서 보름정도 지나고 시사저널에서 카메라 기자, 문화부 기자가 온거야. 그리고 자기 모르시겠냐고 묻더니 고대 출신이라고 하더라고. 학생 때 나를 봤는데 여러 대학신문에서 다루니까 일반 언론에 실어도 되겠다 싶었대. 그래서 그때 날 인터뷰 했었어”
그렇게 여러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그에게 그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냐고 묻자 화려했던 과거를 하나씩 풀어놓으셨습니다.

“내가 KBS 공채 5기야. 연기도 하고 노래도 했었는데 그걸로 먹고 사는 건 힘들더라고. 출연료가 그때 7백 원이었거든. 좋은 경험이었지. 입시학원도 차렸었는데 전두환 대통령 때 학원폐지령 때문에 쫄딱 망했지(웃음)” 그래도 시를 쓰기 위해선 모두 거름이 되는 경험이었다면서 미소 짓습니다.

젊게 사는 비결
바다에 가고 싶을 때는 바다에 가고 산에 가고 싶을 때는 산에 가야 한다는 그는 시를 위해서라도 젊게 사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 가만히 있다가도 오늘은 부산 해운대를 봐야겠다고 하면 서울역 가서 KTX 타고 가서 한 바퀴 삥 돌고 와. 산에 가고 싶으면 곧바로 등산복으로 갈아입지” 그러고 나면 머리가 상쾌해져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속 시원 하게 해버린다고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젊음의 비결이 그것인가 싶어집니다. 몇 살 정도 된 것 같냐고 물으시기에 예순 정도라고 조심스럽게 답하니까 기분 좋게 웃으십니다.

“내가 42년생이니까 몇 년 만 지나면 일흔이야. 그런데 젊게 살려고 하니까 그렇게까지 잘 안 봐. 많이 봐야 예순 초반 그렇게 보지, 허허”

아무리 젊은 마음으로 산다고 하셔도 나이는 속일 수 없나봅니다. 친구의 죽음은 몇 번을 겪어도 먹먹해져서 견디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번 두 번째 시집에는 그러한 것들을 다룬 다소 무거운 주제의 작품들이 들어있습니다.

“일이 있어서 대구에 갔는데 급한 전화가 오더라고. 삼십년 넘은 친구의 여동생이었는데 친구가 죽었다고 하더라고. 그 전날 만나서 술 한 잔하고 내 책 몇 백 권은 자기가 산다고 큰소리 쳤었는데” 라며 말끝이 흐려집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씩 잃으면서 그는 하루하루 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오전에는 시를 쓰며 문화생활을 즐기고 저녁엔 회사에 나가 경비 일을 하십니다.
“엉망으로 살면 하늘에서 그런 모습이 이뻐 보이겠냐”며 언제 자신을 부를지는 몰라도 그때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십니다.

죽음에 관한 것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시각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 장애인들을 위해 시를 4편을 썼어. 이런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이 필요한데 내가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아” 전국장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가 그러한 시를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도 받았다며 뿌듯해 하십니다.

더 많은 계획을 준비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집을 벌써 두 권이나 낸 아저씨는 죽는다 해도 책은 남아 있을 테니까 자신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 될 거라 믿습니다.

“다른 건 없고 한번 간 그 길에는 추억만 남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후회할 일은 안하는 게 낫고 학생들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자신을 개발하는 십년을 내다보는 인생을 살면 좋겠어”

곧 두 번째 시집이 나오면 이곳저곳 홍보해야 하느라 바쁠 것 같다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도 무궁무진합니다. 시는 잠시 보류하고 드라마 극본, 시나리오, 단편 소설 등을 계획하는 그의 눈이 소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소재야 무궁무진하지. 요즘 바쁘고 피곤해서 본격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지만 소재는 많아. 내가 살아온 경험담이 있잖아. 그걸 드라마틱하게 쓰면 작품이 되는 거야”

마지막으로 시 한편 부탁드리니 즉석에서 시가 나옵니다.

「옛길」
지난 날 아쉬울 때면 뒷동산 더듬으며
진달래, 개나리와 옛날을 벗 삼으리
한번 간 그 길에는 흔적도 없고
고달픈 나그네여 돈암동 사거리
던킨 도나쓰 카페에서 머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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