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사상에서 중국 민족주의까지
중화사상에서 중국 민족주의까지
  • 전의건 수습기자
  • 승인 2008.05.18
  • 호수 1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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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족주의, 우월에서 실용으로의 변천사
처음 중국인들은 황하의 중류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주변 민족들을 적인, 이인, 술인, 만이라 불렀다. 그리고 스스로를 ‘화’ 또는 ‘하’라 칭하고, 자신들의 영토를 중화 또는 중원이라 부르며 우월의식을 가졌다. 이를 ‘중화사상’이라 한다.

송명조 이후 유학이 중국을 지배하는 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중화사상은 예의와 배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변방의 이민족들을 금수의 무리로 취급하고 중국의 황제가 덕으로 교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런 배경으로 중화사상은 화이사상으로 발전했다.  화이사상에 근거한 중화세계질서는 19세기까지 이어져 내려오다가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구열강의 중국침략이 본격화되며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질서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보통 국가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주변 국가로 진출을 강화하자 청제국은 1870년대부터 주변지역을 영토화하면서 조선의 내치ㆍ외교에 대한 간섭을 강화해 조공체계를 근대적으로 개편하려 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제국은 국제사회에서 최하위 계층으로 추락했다.

이 같은 상황은 중국인에게 굴욕감, 적개심, 화친하고자 하는 심리 서방의 발전에 대한 학습과 서방의 영향에 대한 통제 등의 심리를 줬고 끝내 화이관념에 근거한 세계 질서관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1900년대 초 혁명파들은 반청왕조와 반제국주의라는 근대적인 민족주의의식을 발전시켜나갔다. 이들은 만주족이 지배하는 청제국을 타도해야 서구열강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고, 중국이 세계의 민족구성원으로서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제국이 붕괴하면서 중국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근대적인 민족국가가 됐다.

오늘날 중국의 민족주의는 부강한 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 단결과 통합의 수단으로 공산당에 의해서 제창되면서 등장했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양극화의 증대,  부패의 만연, 중앙권력의 약화, 서방세계의 중국의 성장에 대한 반감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사회적 통합과 체제안정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 등 국내 안팎의 목적을 이뤄내기 위해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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