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론을 둘러싼 쟁점들
남북국시대론을 둘러싼 쟁점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4.14
  • 호수 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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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남북한에서 발해사를 신라와 함께 한국사의 체계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은 점차 설득력을 얻으며 국내외에서 남북국시대론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북한에서는 남북국시대란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남한에서는 남북국시대론을 사용하더라도 통일신라를 인정하는 경우와 부정하는 경우로 나뉜다.

  북한은 제일 먼저 발해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 만큼 당연히 통일신라를 부정하였다. 따라서 1962년에 나온 책에서는 ‘신라에 의한 국토 남부의 통합과 고구려 고지에서의 발해국의 성립’이라는 소제목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1977년에는 ‘신라에 의한 국토 남부의 통합과 발해의 성립’으로 줄었다가 1979년에 ‘발해와 후기신라’로 바뀌었다. 통일신라를 부정하면서 표제어를 간략화하려는 추세를 엿볼 수 있는데, 신라보다 발해를 앞에 내세운 점이 주목된다. 북한이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은 것은 봉건적 역사인식에 속하는 조선후기의 남북국시대론과 구별하려는 의도라고 짐작된다.

  남한에서는 남북국시대론이 점차 일반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제는 여전히 통일신라였다. 즉 발해는 삼국통일이 일단락된 뒤에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왕조로서 삼국통일이 대동강 이남의 부분적인 통일에 그친 것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반면 통일신라를 부정하는 남북국시대론에 따르면, 이른바 통일 과정은 신라의 백제통합과 당의 고구려 점령 실패에 뒤이은 발해의 건국에 다름아니다.

  남북한의 인식 차이는 분단의 장기화 및 남북한의 체제 경쟁과 맞물리면서 1980년대 이후 각자 은연중에 신라와 발해를 현재의 남북한에 견주려는 발상이 등장하였다. ‘발해와 후기신라’로 파악함으로써 발해의 우위를 내세우는 북한은 통일신라론이 “사실상 발해를 조선력사에서 떼내려는 것이며 ‘신라중심설’과 ‘신라정통론’을 내세움으로써 남조선 괴뢰들의 매국배족적인 ‘북진통일론’에 그 어떤 력사적 근거를 제공하려는 어용행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하는 반면, 남한에서는 통일신라의 의의를 강조한 나머지 이를 부정하는 견해에 대해 북한의 고구려 중심사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비난조차 나오고 있다.

  발해사는 남북한만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도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과거 발해의 영역이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도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발해사를 자신의 역사로 보고 있다. 발해에 대해 중국은 속말말갈이 주체를 이룬 당나라의 지방민족정권으로 규정하고, 러시아는 말갈족이 중심을 이루는 러시아 극동의 소수민족의 역사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과 러시아도 발해사를 한국사로 파악하는 남북국시대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발해사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각국이 근대 국민국가의 일국사적 시각에서 발해의 역사를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민족사의 체계를 수립하는 차원에서 제기된 남북국시대론은 남북한의 체제 경쟁과 동아시아 역사 분쟁이라는 이중 과제 속에서 그 의미가 새롭게 설정되어야 하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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