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못 벗는 국감
벼락치기 못 벗는 국감
  • 취재부
  • 승인 2005.10.09
  • 호수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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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 학과>교수
요즘 한창 열리고 있는 국정감사는 민주화의 징표이다. 유신체제와 5공 때에는 폐지되어 있었다. 국회가 행정부 업무를 감시, 감독하겠다는 국감의 취지를 독재적 대통령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 후 민주화에 발맞춰 1988년 국감이 부활되었다.

국회가 행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건다는 점에서 국감은 지난 십수 년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감의 좋은 취지와 나름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다. 관련자들이 보이는 근본적 행태상의 문제는 차치하자. 의원들의 전문성 결여, 불성실한 준비, 고압적 태도, 인기영합적 한탕주의는 워낙 근본적인지라 하루아침에 고쳐지기 힘들다. 피감기관 측의 무성의한 태도, 면피성 답변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고질적 행태상의 문제는 논외로 해도 국감 운영제도에서 상당한 결함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국감이 일년 중 정해진 20일의 기간에 한꺼번에 실시된다는 문제점을 들 수 있다. 의원들과 보좌인력이 총동원되어 밤샘 준비를 해도 충실한 심의와 질의가 이루어기 힘들다. 행정 공백이 생길 정도로 공무원들이 자료준비에 매달려도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처럼 만족스럽지 않은 국감을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전쟁처럼 치루고 나도 일단 국감이 끝나면 의원과 관료 공히 제기된 사안에 대한 후속조치에 별 신경을 쓰기 힘들다. 잠시 높아졌던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 금세 꺼진다. 벼락으로 공부한 내용은 곧 까맣게 잊혀지는 것과 같다. 문제제기와 답변이 불충분한데, 후속조치마저 소홀히 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벼락치기라는 제도적 맹점은 행태상의 문제에 비해 비교적 단기에 고칠 수 있다. 제도 개선이 잘만 되면 궁극엔 행태상의 바람직한 변화까지 가져올 것이므로 우선 그 쪽으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개선 방향은 명확하다. 첫째, 상시국감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피국감기관들을 분기 내지 2개월 간격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국감을 시행하면 보다 충실하게 진행될 것이고 전체적인 행정 공백이나 여야 전면전도 피할 수 있다.

둘째, 필요시 수시로 행정부 업무를 감시, 감독할 수 있는 여지를 늘려야 한다. 그래야 정기 국감만 요행 넘기면 행정부가 국회 눈치를 한동안 안 봐도 되는 현실을 방지할 수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수시 국정조사는 본회의 의결을 요하므로 극히 드물게만 실시될 뿐이다. 국정조사 발동요건을 해당 상임위 의결로 바꾼다면 보다 자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무언가 행정부의 잘못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국감을 수시로 열 수 있다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위상과 영향력이 높아질 것임이 자명하다.

이처럼 상시 및 수시 국감제도를 도입하고 국정조사 발동요건을 완화한다면 벼락치기 국감의 병폐가 줄 것이다. 물론 어떤 제도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행정부 측은 국정운영에 불필요한 제동을 건다고 반발할 것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가 이런 행정부 측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의회 위상의 제고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원칙을 생각할 때, 그리고 행정부로 과도히 기운 권력의 추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점이라는 현실을 볼 때, 벼락치기 국감제도를 고쳐 국회의 대행정부 견제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당위성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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