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잔인한 세상에 점점 적응하고 있다”
“사람들이 잔인한 세상에 점점 적응하고 있다”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03.17
  • 호수 12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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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나홍진<디자인대ㆍ공예학과 93> 감독을 만나다

이 사람 세다. 압도적인 첫인상부터 거친 말투까지, 과연 「추격자」감독답다. “포스가 느껴진다”는 기자의 말에 음식을 내오던 아주머니께 “제가 그래요?”라며 능청스럽게 묻는다. 워낙 여러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많이 해 똑같은 질문을 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기자를 바라보며 한마디. “학생이면 그냥 학생답게 해, 다른 상업적인 기자들 따라하지 말고”

좋다. 준비해왔던 질문들은 모두 덮어버리고, 그냥 아는 동네 형님이라고 생각하자. 영화를 보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관객 중 한 명으로서, 이 영화의 감독이 우리학교 선배라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후배 중 한 명으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직 3월이긴 하지만 「추격자」는 2008년 한국영화의 첫 발견이다. 전국 관객 400만 명을 바라보고 있고(신문이 나올 때쯤이면 벌써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에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되기도 했다. 김윤석과 하정우에게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고, 나홍진 감독은 ‘충무로가 주목할 만한 대형 신인감독이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혀. 관객 수는 신경도 안 썼지. 이제 첫 작품이고, 그런 거는 정말 생각도 안했어.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은 신경 안 써.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추격자가 잘된 것도 다 배우 덕이니까”

「추격자」의 두 배우, 김윤석과 하정우
두 배우의 캐스팅 기준은 그냥 연기를 잘 하기 때문이었다. 김윤석은 「타짜」의 아귀,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두 배우도 시나리오를 보더니 흔쾌히 허락했다고.

“김윤석 선배님은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하고 너무 딱 들어맞더라고. 하정우 씨도 마찬가지고. 김윤석이라는 배우는 이상하게 눈에 들어와. 어떤 역할을 맡아도 이상하게 시선이 간다니까. 「시실리 2km」때부터 범상치 않았어. 그때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나 하고 연관지어보면 더 놀랍잖아. 하정우 씨 연기도 놀라웠지. 지영민(하정우)이 도망치면서 맨홀 뚜껑을 밟고 넘어지는 장면이 있잖아. 의도한 게 아니고 그냥 넘어진 거야. 근데 바로 일어나서 뛰더라고. 나중에 왜 그렇게 뛰었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컷 안했잖아요. 이러는 거야. 멋있잖아. 짜릿하더라고"

영화계에서는「추격자」가 「공공의 적」과 「살인의 추억」을 보고 자란 세대의 멋진 대답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작 나 감독은 전혀 다른 영화란다. 말투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신인감독의 패기라고 해야 할까. 「추격자」의 압권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크게 2가지 정도다. 엄중호(김윤석)의 “4885…너지?”와 지영민(하정우)의 “안 팔았는데…죽였는데”  

“압권인 건 잘 모르겠는데 영화를 만들 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찍었던 장면들이야. 편집된 장면이긴 하지만, 김미진(서영희)과 지영민(하정우)이 우체국 앞에서 처음 만났던 장면도 심혈을 기울였어. 4885는 아무 의미 없어. 그냥 내 옛날 집 번호야. 근데 4885라는 숫자의 조합이 발음도 잘되고, 기억에도 잘 남잖아. 한 번 해봐(웃음). 망원동을 배경으로 잡은 이유도 딱히 없어”

「추격자」를 만든 이유
나 감독은 사실 인터뷰가 재미없다. 연출자가 영화로 얘기해야지, 입으로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인터뷰도 영화 개봉하고 3일정도만 하고 그 이후로 다 거부했다. 본지 기자들은 후배라서 만난 거란다. 어떤 영화를 만들 건 간에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는 느껴야 한단다.

“못 느꼈으면 미안하지. 그건 내가 잘 못 만든 거야. 얼마 전에 이호성이라는 전 야구선수가 일가족 살해한 사건이 있었잖아. 이게 5년 전에 발생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보면 그냥 이런 사건이 발생했네, 담담하게 바라보잖아. 이게 왜 담담할까. 지금 세상은 너무 잔인한 것에 익숙해져 있어. 생각을 해보자고, 떠올려 보자고. 그날 밤, 그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얼마나 끔찍해. 너무나 잔인한 거야.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잖아. 근데 사람들이 그런 세상에 그냥 적응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야.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그럼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내 입장은 이런 거야. 사람들은 한 줄의 글귀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이 글귀 하나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

「추격자」는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 벌어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에서 동기를 얻어 제작한 영화다. 그 당시 온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며칠 뒤에 정남규라는 연쇄살인범이 또 잡혔다. 하지만 그땐 반응이 확 줄었다. 잔인한 사건들이 많아지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거다.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그런 글들을 접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좀 변화된 시각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어. 아니나 다를까 「추격자」가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호성씨 사건이 터졌지. 근데 사람들의 시각들이 달라진 게 없잖아. 이 영화를 보고 유사 범죄가 일어났을 경우에 사람들의 시선들이나 생각들이 하나 둘씩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안타깝지. 어쩌겠어. 변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고, 어제와 오늘은 그대로인데”

아련한 대학 시절의 추억
「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정윤철 감독, 4월 초에 개봉하는 「GP506」공수창 감독, 그리고 막내인 「추격자」 나홍진 감독까지. 지금 충무로는 한양대가 접수 중이다. 하지만 나 감독은 우리학교 디자인대 공예학과 93학번 동문이다.

“특별한 건 하나도 없었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지. 졸업하기 전부터 CF 조감독을 했는데 그냥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내 생각대로 만들고 찍는 게 좋더라고. 졸업하고 학교 한 번도 안 가봤어. 옛날에 나 학교 다닐 땐 야산에서 아저씨들이 개 잡아먹고(웃음). 멀리서 낚시하고 있고 뭐. 학교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서 원시인처럼 살았지. 진짜 재밌었지. 학교가 죄다 논하고 벌판이었거든. 아무것도 없었어. 역에서 딱 내리면 이 말밖에 안 나와. 말도 안 돼”

나 감독에게 학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수업도 필수 빼고는 다 체대 수업을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대 강의들은 밖에 나가면 돈 주고 배워야 되니까. 그게 등록금을 가장 아끼는 길이란다. 

“고등학교 때는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어(웃음). 근데 대학이라는 곳을 딱 가니까 이건 어마어마한 거야. 내가 몰랐던 문화들이 막 다가오는데,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들더라고. 그래서 미친 듯이 놀았지. 학교도 잘 안 나갔어. 물론 학점을 필요로 하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면 학점이 중요하겠지. 근데 분명한 건 강의실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거든. 근데 그걸 놓치고, 교육과정을 마쳤다고 오해하는 학생들이 있더라고. 사회에 나가면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느낄 거야. 사랑도 해보고, 여행도 다니고, 원 없이 술도 마셔보고, 폐인도 돼봐. 타 과 수업도 많이 들어보고. 그런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학점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보거든. 사람은 본 만큼이고, 접해본 만큼이니까”

▲ 나홍진 감독은…1974년에 출생했다. 1993년에 한양대학교 공예학과에 입학했고,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다. 2005년에 단편영화 「완벽한 도미요리」로 제4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2007년엔 단편영화 「한」으로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단편 영화 감독상과 제8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8년엔 장편영화 첫 데뷔작인 「추격자」가 지난 2월 14일에 개봉했다.


어렸을 땐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본 영화에 대해 얘기 나누는 게 좋았다고. 그런 재미를 뺏는 게 너무나 싫단다. 영화는 관객이 해석하고 싶은 데로, 상상하는 데로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400만 관객이 보면 「추격자」는 400만 개의 영화가 되는 거다.  

“내가 어디서 영화를 정상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잖아. 전공이 공예학과인데. 지금 상영하고 있는 영화, 비디오, DVD들이 모두 다 내 선생님이지. 기억에 남는 영화도 많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도 너무나 많아. 존경하는 감독님도 엄청 많고”

나 감독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다. 한양대를 배경으로 영화 찍을 생각 없냐는 말에 한번 생각해본다며 학교에서 협조해주냐고 되묻는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좋은 배우와 좋은 영화를 찍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다. 한양대 출신 중에도 훌륭한 배우들이 많으니까 언젠가는 ‘한양대 합작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다. 

“후배들이 왜 사는지 고민도 좀 해봤으면 좋겠어. 20여 년 동안 살면서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르면 말이 되나. 근데 이건 누구한테 물어봐도 대답이 바로 안 나와(웃음). 나도 몰라. 왜 사는지. 열심히 살아야지. 아직 결혼은 안했어. 빨리 해야지. 9년 된 여자 친구가 있는데, 대학 C. C였어. 여자 친구 예뻐. 땡 잡았다고? 난 잘 생겼잖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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